얼굴이 검은 외국인 스님도 목탁을 두드렸고, 나어린 동자승도 합장을 하고 있었다. '종교화합 사회통합' 등등의 수천 개 만장이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 27일 열린 범불교도대회는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과잉검문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로 촉발됐지만, 그 뿌리는 훨씬 깊다. 그 뿌리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닿아있다. 사상 초유의 야단법석(野壇法席)으로 열린, 그리고 다행히 평화적으로 끝난 범불교도대회의 공식 명칭이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명박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골적으로 종교적 편향성을 드러내 왔다.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섬기겠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5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인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이른바 서울시 봉헌 발언은 이미 서울시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깊숙하게 각인됐다.
이명박 정부 6개월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초 종교적 편향성이 큰 원인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그리고 1기 내각을 구성할 때부터 대통령 자신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 출신 인사들을 다수 기용함으로써 학연(고려대), 지연(영남)에 종교 편향까지 겹친 '고소영 내각'이라는 부끄러운 별명을 얻어야 했다.
대통령 뿐인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한 술 더 떴다. 청와대 경호처장은 "모든 정부 부처 복음화가 나의 꿈"이라고 했는가 하면, "10년 내에 한국 국민의 90%가 기독교인이 되게 하겠다"고 큰소리치다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됐던 목사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사탄'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고소영 내각의 보건복지부장관은 한국사회 양극화의 원인을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돌린 글을 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세 사람 다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이들의 발언은 결코 일순간의 헛소리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자세히 그들의 의식을 들여다보면 이건 단지 종교 편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특정 종교에 기대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편가르고, 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분리시키는,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시 종교의 까닭으로 돌리는 비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편가르기다.
최대 다수 국민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인 대통령이, 그 주변의 한 줌 권력자들이 그런 편가르기를 해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은 5년 동안이라도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장로라는 것을 잊어야 한다. 한국에서 사람살이가 더 나아지고 빈부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인 소통과 화합의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지구상 모든 종교의 신을 '만들어진 신'이라고 했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국민을 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빨리 불교도들과 비기독교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마음 속으로는 그러기 싫더라도 겉으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성서에도 불경에도 좋은 말 많이 있겠지만, 우리 스님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선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백범이 언제나 마음에 새겼다는 경구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취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세속의 권력자는 종교의 길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똑바로, 눈보라 퍼붓는 들판을 걸어가야 하는 자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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