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선 장수의 용맹 못지않게 책사(策士)의 지략도 중요한 법. 인수합병(M&A) 대전도 예외는 아니다. 회사의 자금력, 비전, 컨소시엄 구성 능력도 중요하지만, 파트너(매수자문사)로 뛰는 투자은행(IB)의 책사로서 역할도 M&A전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매물 기업에 대한 실사와 가치평가 뒤 상대 대리인(매각 자문사)과 한 테이블에 앉아 밀고당기는 가격협상을 하는 게 IB의 임무. 물주(재무적 투자자)도 끌어와야 한다. 정확한 정보력과 분석력 협상력 네트워크 등을 고루 갖춰야 승리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
바야흐로 '글로벌 IB 대전'이 국내에서 불붙는다. 우리나라 M&A 역사상 최대규모(7조~8조원)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의 키를 쥐기 위해 해당 기업들이 저마다 해외 유수의 IB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메릴린치(포스코) UBS(GS) JP모건(한화) 모건스탠리(현대중공업) 등 면면도 화려하다.
유일한 유럽계로 GS가 택한 UBS는 지금까지 최대 규모였던 LG카드(7조2,000억원) 등을 포함해 수년간 굵직굵직한 '빅딜' 자문을 담당해왔으며, 승률도 매우 높았다. 매각보단 매수 자문에 공을 들였기 때문에 한발 앞서간다는 평. 또 은행이나 재무적 투자자 등 인수와 관련된 이해당사자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세가 가장 빠른 글로벌 IB이기도 하다.
한화의 파트너인 JP모건은 지난해 국내 M&A 자문 1위에 등극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성공적인 매수 자문을 통해 발휘한 깐깐한 시장 분석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LG카드 매각 자문에 나섰다가 공개매수 관련 조항을 놓치면서 매각 자문의 명성엔 다소 흠이 갔지만, 이번 대우조선해양 건은 매수 자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서브프라임 충격을 받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포스코의 메릴린치는 최근 국내 M&A시장에서 뚜렷한 실적이 없다. 골드만삭스의 저가공세에 밀려 대우조선해양 매각 자문 선정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4곳의 IB중 전문인력을 가장 많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포스코의 파트너로 거론된 리먼브라더스는 산업은행의 인수설이 불거지면서 낙마하게 됐는데, 메릴린치는 이를 역이용했다. 실적 부진을 만회하려는 팀 구성원들의 응집력이 전략이다.
현대중공업이 잡은 세계 2위 IB 모건스탠리는 두 가지 재기를 꿈꾸고 있다. 원래 자문을 맡았던 두산이 인수전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퇴장할뻔했지만 다행히 현대중공업의 부름을 받았다. 2003년 국내 M&A 자문 2위였다가 해마다 뒤쳐지고 있는 위상도 드높여야 한다. 그러나 국내 조직의 정비가 미진하고, 금융회사 매각 주간이 전공이란 점이 조금 걸린다.
이들을 파트너로 정한 기업의 신뢰도 대단하다. "UBS의 명확한 인수전략 공감"(GS) "JP모건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이해도 탁월"(한화) "메릴린치는 실무능력 압권"(포스코) 등이다. 사실 4대 IB의 전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막상막하다.
매수 자문에 성공한 IB는 돈과 명성을 함께 얻는다.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는 전체 거래대금의 0.1%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돈보다 M&A 시장에서 해당 IB의 몸값과 이름값을 두고두고 높일 수 있는 전리품(실적)이 훨씬 값질 수 있다.
하지만 '용병들만의 리그'를 바라보는 국내 증권사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매각 매수 주체 모두 국내 기업인데 굳이 외국계 IB에게만 몰아준 건 지나치다"라고 불평했다. 정부와 기업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한국판 골드만삭스'육성 운운하면서 실제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투자증권(포스코) 한화증권(한화) 삼정KPMG(GS) 등 국내 IB도 '공동 주관'이란 이름으로 구색을 맞추고는 있지만 역할은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 희망기업 관계자들은 "사세가 걸린 막중한 사안이라 국내 IB의 잠재력만 믿고 일을 맡길 순 없다"고 말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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