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논란 속에서 이병순씨를 KBS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부와 여당, KBS노조는 첫 KBS 출신 내정자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반면 야당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은 이사회의 추천이 원천무효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 ‘공영' 논란 이면은 영향권 싸움
정부와 여당 쪽에선 이번을 계기로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려 한다. 야당과 진보적 세력은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과 새 사장 선임을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로 파악한다. 국민에겐 양쪽 세력이 사장 선임을 놓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공영방송 정상화 방안이나 이에 대한 반발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본 것일 뿐, 그 본질은 같다. 각각 KBS의 정상화나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공영방송을 상대의 영향권에 둘 수 없다는 의사표현과 다르지 않다.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공영방송도 사회가 부여한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시스템을 없애거나 개혁할 수밖에 없다. 많은 논란 속에서도 집권세력이 공영방송제도를 선진화하지 못한 이유는 이를 유지하는 비용보다 개선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거나, 들 것이라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우리 언론제도를 살펴보면 공영적 지상파 방송 뿐만 아니라 상업적 일간지까지도 신규사업자의 진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경영에서도 정부의 제도적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그 후 10년 동안 주요 일간지는 철저하게 언론개혁의 대상이 됐다. 주류 언론이었던 일간신문이 주위환경에 대한 사회적 감시기능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상파 방송에 대해 더 큰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KBS와 MBC의 사회통합 기능을 확대하며 소수파 정권의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자 했다. 이에 따라 신문기자 출신 박권상씨와 정연주씨가 KBS사장에 취임했다. 이들의 취임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선거에서 이긴 쪽의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라는 암묵적 합의에 따라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공영방송의 인사권을 갖는다는 관례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이번 KBS사태를 보면 그런 사회적 합의가 깨지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공영방송시스템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야당 몫의 KBS이사들이 신임사장 임명절차를 거부했듯이, 야당이나 진보세력도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에게 공영방송의 인사권이 귀속되는 것을 참아낼 수 없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도 지금이야말로 거대화한 공영방송제도를 개선해 나갈 때이다. 그 동안 공영방송은 집권당의 안정적 통치를 위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 일괄적인 방송통신제도 개혁을
제5공화국의 방송통폐합 이후 지난 30년간 공영방송 실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와 같이 이전 정부 시절의 편향적 프로그램 제작의 과오를 고백해왔다. IMF 경제위기나 탄핵사태, 촛불시위 보도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공영방송의 편파논쟁을 보더라도 KBS와 MBC가 앞으로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비효율적 경영구조와 비합리적 노사관계가 지속되는 거대한 공영방송 시스템은 지양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새 정부 초기에 제시됐던 일괄타결 방식으로 방송통신제도의 핵심적 구조개편을 실행해야 한다. 올림픽 야구팀이 9회 말 1사 만루 상황에서 6-4-3 더블플레이를 펼쳤듯이.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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