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 전후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바다를 지배했던 바이킹족은 배를 새로 만들면 배의 안전과 종족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이런 야만적 풍습은 오래 가지 못했으나 그 유래는 가톨릭의 세례의식과 접목돼 근대적 의미의 선박 명명식으로 발전했다. 새 선박을 처음 물에 띄우는 진수식 때 선주의 딸 또는 부인이 대모가 되어 배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샴페인과 볼을 떠뜨려 무사항해를 축원하는 이벤트다. 19세기 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재위시절부터 이런 관행이 정착됐다고 한다.
▦ 진수식은 스폰서(명명자)로 초빙된 여성이 선박과 진수식장 선대(船臺) 간에 연결된 밧줄을 금색 손도끼로 절단하는 순간 이름을 부여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손도끼로 밧줄을 절단하는 것은 태아가 태어날 때 모태와 연결된 탯줄을 끊는 것과 같은 의식으로 배의 탄생을 의미한다. 배의 이름은 선주의 취향과 선박의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지어지는데, 1974년 회사 설립 이후 30여년간 세계 각국에 1,000척 이상의 배를 인도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여성을 상징하는 꽃(샤프란ㆍ로터스) 보석(토파즈ㆍ루비) 여신(비너스ㆍ베스타) 등의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 선박 명명식의 스폰서로 초대된 국내외 유명 여성인사는 심심찮게 화제가 되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도 그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 4월 독일의 중견 선박회사인 리크머스사가 경남 마산에서 2만3,000톤급 컨테이너선 '리크머스 서울' 명명식을 가지면서 김 여사를 대모로 초청한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화여대 4학년 때인 1975년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현대중공업의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다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눈에 들어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한 일화도 유명하다.
▦ 현대중공업이 지난 주 울산에서 가진 독일 오펜사의 9,700TEU급 컨테이너선의 '산타 리아나' 명명식에는 오종쇄 노조위원장 부인 박서진씨가 스폰서로 초청돼 화제가 됐다. "안정된 노사관계가 최고의 품질, 최고의 고객서비스로 이어졌다"며 선주측이 감사의 표시로 특별히 오 위원장 부인을 꼽았단다. 올해로 14년 무분규를 기록한 이 회사에서 노조위원장 부인이 스폰서로 초청된 것은 이번이 벌써 3번째다. 하루 앞서 열린 프랑스 선사의 명명식엔 시운전부 직원의 어머니가 나섰다니 다음엔 비정규직까지 껴안고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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