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어제 이한(離韓)에 앞서 서울 성동구 뚝섬 서울숲을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 청계천 복원과 함께 환경분야의 큰 업적으로 꼽히는 도심 생태공원이다.
단기 고속성장의 산물로 환경문제가 발등에 불이 된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환경정책을 벤치 마킹하려는 의도겠으나 후 주석에겐 이 대통령에 대한 배려도 있었음 직하다. 이 대통령은 먼저 도착해 있다가 후 주석을 맞아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내로 10여분 동안 숲길을 산책하며 환경문제 등을 주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번에 두 정상은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후 주석을 보니 오랜 지기처럼 서로 잘 이해하고 친밀해졌음을 느낀다”고 한 것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로서의 관계를 느끼고 있다”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닌 성싶다. 취임 후 6개월 동안에 세 번이나 만나 우의를 다졌으니 우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 미국 중국 정상과 다진 우의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후 주석과 만찬을 하던 그제 밤, 이 대통령의 또 한 친구로부터 친필 서한이 도착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5, 6일 방한 때 환대해 준 데 대해 감사 편지를 보낸 것. 여행이 짧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룩했다, 우리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정상회담 후 상대국 정상이 감사 서한을 보내는 경우는 있지만 친필로 직접 정성스럽게 써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 편지 도착 시각이 공교롭다. 이 대통령이 후 주석 일행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을 통해 진하게 우정을 나누고 있던 바로 그 즈음이다. 마치 자신의 친구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우정을 질투하고 견제나 하려는 듯이 시간을 맞췄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부시대통령과도 세 번 만났다. 지난 4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돼 환대를 받았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 ‘내 친구’(my friend)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다. 지난 달 일본 도야코 G8정상회담 기간 회담에 이어 이달 초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통해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직전 타결된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이 한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축복을 받지 못한 우정이었지만.
그제 이 대통령과 후 주석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장문의 공동성명을 읽으면서 이 대통령의 또 한 친구 부시 대통령과의 우정 전선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성명은 정치분야, 인적ㆍ문화교류, 지역 및 국제협력 등 4개 분야에 걸쳐 무려 34개의 구체적 사업 합의를 담고 있다. 경제 문화는 물론 정치 군사 안보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교류와 협력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이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 무대에서 협력을 확대할 때 또 한 친구의 나라 미국의 이익과 상충하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지역 및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조율과 협력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미사일 방어(MD)체제 가입 등 미국과 중국 간에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의 경우 중간에 낀 우리의 선택이 난감해진다. 한중 정상이 재확인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와 한미가 지향하는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에서 ‘전략적’이 겹치는 데서 오는 딜레마다.
■ 두 우정 조화시킬 능력 있나
물론 우리의 대미 및 대중 전략적 관계 추진이 꼭 상충하는 것만은 아니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전지구적 환경문제 등 이해가 일치하거나 함께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사안도 적지 않다. 이런 공통분모를 기본 추동력으로 대미, 대중 전략적 관계를 조화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에게 대미, 대중 전략적 관계의 상충을 조절하고 공통분모를 키워나갈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있느냐다. 이 대통령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모처럼 구축한 두 친구와의 우정은 비극적 삼각관계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 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