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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掌篇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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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掌篇 2

입력
2008.08.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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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어떤 시는 말을 잃게 만든다. 알뜰한 해석과 예리한 분석, 판단을 정지시켜버린 채 가슴을 향해 단도직입해 들어온다. 이런 시 앞에서 비평가들은 할 일을 잃게 된다.

진도 9.0 이상의 강진을 거느린 시다. 처음 본 게 스무 해도 더 전인데 여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을 보면 리히터 지진계 따위로는 측정 불가능한 진앙을 거느린 것이 틀림없다.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뭉클한 비애감에 속절없이 젖어들게 하는 시. 그 흔한 수사도, 상징도, 비유도 없지만 매사에 심드렁해 있던 가슴을 쓰나미처럼 뒤흔들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태연하게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오는 시.

시를 얘기하면서 더러 시인의 삶을 같이 들려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드물지만, 김종삼(1921~1984)이 그런 경우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그는 말년이 몹시 불우했다고 전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술과 음악과 시 뿐이었다는데,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동냥하고 밥집 문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거지 소녀와 시인이 자꾸 겹쳐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인은 노래했다. <나의 本籍> 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라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그리고 또 노래했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고 나의 본적은 또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라고. 이렇게 가엾고, 그늘지고, 아픈 것들에 ‘본적’을 둔 시인이 그립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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