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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22> 미국의 총기 문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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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22> 미국의 총기 문제 2

입력
2008.08.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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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소유권 문제는 정치인인 내게 가장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였다. 워낙 민감한 사회 현안이어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입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어중간한 태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잖아도 공화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백인들은 내 영어 액센트를 통해 과연 내가 진짜 미국인인지 의심하는 듯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거나 전통적인 보이 스카웃에 가입해 본 적이 없고, 또 미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 생활을 한 적도 없으니 도무지 내게서는 전통적인 오리지널 미국인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한번은 나를 재정적으로 도와준 백인 부자집 만찬에 초대 받았었다. 이 사람은 식사 전 칵테일 시간에 여러 종류, 수십 개의 총기를 모아 놓은 멋진 진열장을 자랑스럽게 내게 보여주며 총기의 역사와 그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그가 총기류에 대해 내 의견을 물을 때 나는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어 괴로웠다.

한국에선 이런 다양한 종류의 총기를 본 적도 없고, 총기 경험이라면 오로지 군 복무 때 만져본 M1 과 칼빈총이 전부이니 그 당시 총에 대한 나의 상식은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윈체스터를 꺼내 보여줄 때 그걸 들고 겨냥해 보면서 총의 밸런스가 좋다느니, 또는 느낌이 가뿐하다는 등으로 응답하는 게 예의인데 어떻게 장전하는지도 모르는 내게는 오직 땀이 나는 일일 뿐이었다.

빨리 저녁이나 먹고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또 그 옆방에 가 보니 사냥에서 얻은 전시품들, 곰 사슴 노루 버팔로 등의 머리들이 빽빽하게 벽에 걸려 있었다. 사냥을 원래 싫어하는 내게는 그 많은 짐승들의 머리가 오싹한 느낌을 주면서 꿈에 볼까 무서웠다. 모두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고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이 짐승들의 머리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주로 남미, 아프리카에 사냥을 가 잡은 것들이라며 자랑한다.

이 것들을 사냥해 잡으면 몸뚱이 고기는 원주민이 구워 먹고 얼굴은 골을 다 빼고 그 안에 방부제를 넣어 말려 갖고 온다는 설명인데, 눈알도 빼서 화학약품으로 닦고 다시 집어 넣는다는 얘기다. 끔찍스런 이런 일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니 난 그저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내 의견을 물어볼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이 때마다 난 전통적인 미국인이 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스쳐갔다.

총은 미 헌법 2조에 보장된 권리다. 이들 앞에서 내가 나라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총기 휴대를 반대하게 되면 어찌 될 것인가. 아찔했다.

미국이 독립운동을 벌일 당시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휘하에 모여든 병사들은 전부가 자원병으로,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총을 들고 나온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미국에 아직 이렇다 할 군대 조직이 없고, 특히 무기도 부족했을 당시 이들 자원병들이 보유한 총기가 미국 독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다. 미국인들에게 총은 이처럼 중서부지역에선 인디언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필수품, 그리고 결국에는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통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총기 보유가 헌법 개정안 제 2장에 명백히 명시된 기본권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당시 공화당은 국민에게 부여된 신성한 헌법 상의 권리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며 총기 규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총기 소유권을 내세우는 것은 200년 전의 낡은 논리로, 현실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총기가 애당초 의도와는 달리 인디언이나 영국군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 갱 싸움에 사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규제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육군 대령의 아들 집에 초대 받았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자랑스런 아버지의 사진이 전시돼 있고 그 옆에는 갱들의 권총에 개죽음을 당한 손주 아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 당시 심각했던 청소년 갱들에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내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처럼 쉽게 총을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묻길래 한국에선 총 휴대가 불법이고 총을 사고 파는 그 자체도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나더러 어떻게든 미국사회도 총이 없는 한국사회 같이 만들어 달라는 절실한 호소를 했다. 마침 브래디의 총 휴대 금지법 (The Brady Handgun Control Act) 이 의회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때였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이 총기 휴대에 대한 나의 확실한 대답을 기다릴 때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나는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무척 괴로웠다.

총기로 희생 당한 아이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는 바로 이 방에서, 눈물이 글썽해 있는 그 부모들과 친지들 앞에서 총기 휴대를 찬성한다고는 죽어도 말을 못하겠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이들의 편을 들면 그 이튿날 신문에 대서특필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미국총기협회(NRA)의 선거자금을 지원받는 내게 찰톤 헤스톤 NRA 회장으로부터 당장 불쾌한 전화가 올 것은 뻔하니 난감했다.

공화당 의원들 대부분이 총기 휴대를 찬성하지만 배경이 전혀 다른 한국 사람인 나로선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결국 이들 앞에서 어물어물 대충 돌아가서 심각히 연구해 보겠다고 답변했고, 이들은 모두 실망하는 눈치였다.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인사를 끝내고 바깥에 나오니 집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총기 반대를 하는 미국인들이 골목을 꽉 메우다시피 했다. 나도 총기 휴대를 반대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난 역시 비겁했다. 공화당의 압력과 돈에 굴복해 투표 날에는 총기 휴대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누가 정치를 양심적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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