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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올림픽과 콩쿠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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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올림픽과 콩쿠르의 차이

입력
2008.08.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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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한국 선수단이 25일 해단식 직후 세종문화회관부터 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도보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 모습을 보니 과거의 카 퍼레이드가 떠오르고, 1974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정명훈이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2위를 차지하자 카 퍼레이드로 그를 환영했던 일화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올림픽 금메달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약소국이었고, 세계적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은 국가적 경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큰 콩쿠르에 입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올림픽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올림픽은 세계 최고를 가려내는 행사다. 올림픽 우승자라 함은 그 종목의 세계 챔피언이다.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이란 이름으로 개최되는 행사도 비슷하지만 올림픽은 특정기간, 특정장소에서 지구촌 축제로 벌어지기에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반면 콩쿠르를 통해서는 세계 최고를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직업 연주가로 자리를 잡은 단계에 이르면 참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콩쿠르에선 유망주를 가려낼 뿐이다.

굳이 올림픽으로 따지자면 축구가 비슷할 것이다. 와일드카드를 빼곤 일정한 연령 이하의 선수만 출전시키지 않는가. 따라서 올림픽 축구 우승국을 세계 최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앞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뿐이다.

아무래도 콩쿠르에서는 연주자의 개성보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해왔는가를 먼저 따지게 된다. 괴짜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쇼팽 콩쿠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자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일화가 있는데, 사실은 아르헤리치가 오버한 것이다. 풍운아보다는 모범생이 콩쿠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권위있는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앞으로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출발선이 조금 앞으로 당겨져서 유리해졌을 뿐이다. 예술가는 우등생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터득한 주관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콩쿠르가 불필요한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전력을 다하여 비교적 단기간에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테크닉 하나만으로는 세상에 얼마나 뛰어난 경쟁자들이 많은지, 그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장착해야만 세계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다만 올림픽 메달과 달리 그것이 궁극적 지향점이어서는 곤란하고 성숙한 연주가를 향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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