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당시 950원도 채 되지 않던 원ㆍ달러 환율은 7월초 1,050원 벽을 뚫었다. 달러당 무려 100원 이상의 환율 폭등에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고환율은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유가 급등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수입물가를 자극했고, 차례로 생산자물가, 소비자물가 폭등세로 이어졌다. “고환율 정책이 인플레의 주범”이라는 비등한 비판에, 당시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도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 정책을 동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키코(KIKO) 파동’도 불거졌다.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으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약정 환율로 물어줘야 하는 키코 계약을 은행들과 체결한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엄청난 손해를 입어야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은행들을 ‘S기꾼(사기꾼)’으로 비판했지만,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린 정부 책임론도 적지 않게 제기했다.
7월 들어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물가를 잡기위해 외환보유액을 털어서라도 환율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무차별적인 달러 매도 공세가 펼쳐진 지 불과 며칠 만에 환율은 50원 가량이나 급락했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은 7월 한달 내내 지속됐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상처만 남은 전투였다. 이 기간 시장에 쏟아 부은 외환보유액은 200억달러에 육박했지만, 그 효과는 잠시였다. 8월 들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환율은 어느새 1,100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실탄(외환보유액)은 넉넉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런 효과도 없이 축 내도 좋을 정도의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비등하다.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한 8월 초 이후 정부의 태도는 다시 바뀌었다. 개입의 강도는 현격히 약해졌다.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시장은 “금리로 물가 잡기에 나선 만큼 이제는 환율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율을 잡겠다”던 정부의 공언을 믿고 환전 시기를 늦춰왔던 기업이나 개인들은 낭패를 봤다. 자고 나면 10원, 20원씩 치솟아 있는 환율에 송금이나 환전, 결제를 언제 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키코 피해도 다시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이장혁 고려대 교수는 “시장 가격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반드시 어느 한 쪽에게는 엄청난 손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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