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시설 불능화 거부 선언은 미국에 대한 협상 카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6자 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 과정을 무시하고 판을 뒤집기보다는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늦추면서 핵 검증 요구를 앞세워 압박하자 반발 차원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분간 경색국면이 불가피하겠지만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의 핵 불능화를 완료해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을 갖고 있고,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응에 따라 타협의 여지는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일단 기 싸움에서 미국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10ㆍ3합의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시리아와의 핵 연계설을 제기하는데다 핵 시설을 신고하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기로 했던 합의에다 검증의정서 합의를 추가로 내놓자 이에 반발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엄격히 이행하자면서 공을 다시 미국에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대해 대등한 거래를 하자는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따라서 북한의 일차적인 목적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조치로 귀결된다. 특히 다음 달 9일 정권 창건일을 앞두고 아무런 전리품 없이 핵 불능화 조치의 마지막 수순을 밟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으로서도 조급했을 것"이라며 "당장 성과를 거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9ㆍ9절 이전에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려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을 향해 공세를 펼친 측면도 있다. 북한이 성명에서 "우리 해당기관들의 강력한 요구"라며 은근히 군부를 거론한 것도 언제든 핵을 다시 보유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와 테러지원국 해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 셈이다.
한미동맹과 6자회담 당사국 간 공조가 강화되는 데 대해 어깃장을 놓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판을 흔들어 미국 책임론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는 "북한이 확실한 검증체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고,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은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핵문제와 연계시킨 것에 대해 불만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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