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 포르테(forteㆍ강하게) 기호가 붙은 마디가 피아노(pianoㆍ여리게)로 연주될 때의 느낌. 정재영(38)은 그런 허허실실로 '주연급'의 레벨을 유지하고 있는, 아마도 한국에서 하나뿐인 배우일 게다. '강약약 강약약…'의 규칙적 리듬에 느닷없이 침범하는 '약약강' 또는 '약강약'의 엇박자.
<아는 여자> 동치성의 어설픈 고백, <바르게 살자> 정도만의 기괴한 책임감, <강철중: 공공의 적 1-1> 이원술의 느물느물한 살벌함에 공통적으로 박혀 있는 호흡이다. 그 오묘한 엇박자에 허를 찔릴 때마다, 관객의 입가엔 주체하기 힘든 웃음이 번진다. 강철중:> 바르게> 아는>
"계산? 아니 뭐 '여기서 바람을 빼야겠다' 그런 정교한 계획을 갖고 연기하는 건 아녜요. 그냥 하는 거죠. 바짝 텐션(긴장)된 인상에서 역으로 풀어지는 무언가에 관객들이 반응을 한다는 건데. 글쎄…. 그냥 내 생활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알고 있는 호흡, 누군가를 웃길 때의 호흡이죠.
쉽게 말하면 '감'이라는 거였다. 무척 어렵게 뽑아낸 질문에 돌아온 꽤 성의 있는 대답이었으나, 풀어 보니 별로 건질 건 없었다. 의뭉스러운 연기만큼 그와의 문답도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기사 쓰기엔 까다로운 화법이지만 얘기를 나누기엔 너무나 편했다. 감지 않은 듯한 머리를 북북 긁으며, 이 동치성(장진 감독 영화들 속에서 정재영의 극중 이름)은 이른 아침 "식전 공복의 인터뷰"를 리드했다.
"근데 <신기전> 은 좀 다르잖아요. 코믹한 요소도 있고 로맨스도 있고 믿기 힘든 역사적 사실에다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부분도 있고. 캐릭터가 들쑥날쑥해서 인물의 성격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정재영식 코미디보다는 시나리오대로 차곡차곡 연기해야 했죠. 진지했다가 능청스럽고, 굉장히 남자다웠다가 다시 슬랩스틱 코미디도 보여줘야 하고…." 신기전>
9월 4일 개봉하는 <신기전> (감독 김유진)에서 정재영은 아픈 과거를 품고 상단 행수로 살아가는 설주 역을 맡았다. 배경은 조선 세종 말기. 자신의 뜻과 상관 없이 나라의 운명이 걸린 신무기 개발에 말려드는 다소 전형적인 역할이다. 신기전>
100억원의 비교적 큰 제작비에 원톱의 역할,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로맨스 연기에다가 정재영 특유의 '의외성'을 지워내야 하는 한계까지. 동치성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정재영이다.
"딜레마죠. 동치성을 좋아하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또 마냥 거기 안주할 수도 없으니까요. 장진 감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해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걸 바라는 관객이라면 예전 작품 DVD를 다시 빌려보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작품마다 다른 장르로 갈아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가고 있는 중이랄까…."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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