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는 자기 자리를 "가장 하찮은 공직"이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상원의장 직을 겸하지만 독자 권한은 거의 없이 허울뿐인 2인자에 머무는 처지를 스스로 비웃은 것이다. 그래도 8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킨 끝에 조지 워싱턴의 뒤를 이어 2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의 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3대 대통령으로 뽑혔다. 이처럼 선거를 통해 제 힘으로 권력 정상에 오른 부통령은 모두 9명이다. 대통령의 변고로 자리를 물려받은 경우는 8차례 있었다. 마냥 하찮게 여길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앨 고어는 러시아 외교와 의회 관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지금의 딕 체니는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비서실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경륜을 바탕으로 역대 어느 부통령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내각제 총리에 비유될 정도다. 그러나 대통령이 권력을 나눠주지 않은 부통령이 제 분수를 벗어나는 법은 없다. 백악관에서 집무하지만 각료회의 등에 참석하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의전 역할에 그친다. 낸시 레이건이나 힐러리 클린턴처럼 기가 드센 백악관 안주인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적고, 또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원래 모습이다.
■부통령 후보는 대통령 유고(有故) 때만 요긴한 부통령보다 오히려 주목을 받는다. 대통령 후보의 취약점을 보완해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인물이 물망에 오르고, 각 후보 진영은 마땅한 러닝메이트를 고르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 나타난 투표 행태에 비춰보면 부통령 후보는 유권자의 선택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특별한 하자가 논란되지 않으면 애초 부통령 후보의 면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허실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선거보다 집권 뒤 국정 수행에 도움이 될 부통령 감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우선적 요건은 대통령의 그늘에서 충성스레 취약한 부분을 메워줄 자질이다.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줄곧 거론된 클린턴은 애초 '최악의 카드'다. 반대로 오바마가 고른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은 '최적격'이라는 평가다. 외교와 워싱턴 정치에 오랜 경륜을 지닌 데다가 두 차례 대권 도전을 중도 포기한 이력과 65세 나이가 안성맞춤이다. 뉴욕타임스의 논객 데이빗 브룩스는 몇 달 전, "늙은 백인 장군을 고르라"고 권했다. 험한 정치싸움에 이골이 난 인물을 그렇게 빗댔다.
강병태 수석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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