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내 것이 아니면 남의 것이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면, 자연히 남의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 같다. 내 것이 무엇이냐를 아는 것은 참 쉬워 보이나, 한편으로 이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을 때가 많다.
어쩌다 만년필이 생길 때가 있다. 큰 계약의 서명식을 하면 관례 상 주최측에서 선물로 주는 것을 받아 오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세상에 만년필을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지간한 글은 키보드를 두드려 생산해 내니 만년필이 끼어들기 힘들다.
신용카드에 서명하는 데 쓰면 좋으련만, 여기에는 볼펜을 사용하여야 몇 장에 한꺼번에 서명이 나타난다. 이래저래 필통에 꽂혀 있는 날이 많다. 이 만년필은 나의 것일까? 나의 소유인 것은 확실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집에서 조금 가면 작은 산이 하나 있다. 그리 높지 않아서 휴일에 산책 삼아 올라가기에 좋다. 봄이면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우유빛 꽃향기가 계곡에 쌓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꿀통에 빠져 있는 듯 하다. 이 산의 구석구석을 저절로 잘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산은 물론 내 이름으로 등기된 나의 부동산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와서 이것이 자기의 산이라고 말한다면 매우 억울할 것 같다.
이렇게 상반된 것 사이에서 생각을 정리해 내려면 또 하나의 개념이 필요하다.'주어진 것'이라는 개념이다. 주어진 것은 나의 것도 남의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나의 것이 된 것이며, 진실로 나의 것이 되기 위하여 내가 그것에 무엇인가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만년필이 진실로 나의 것이 되기 위하여는 열심히 사용해 주어야 하고, 자주 물청소도 해 주어야 한다. 늘 양복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서 예뻐해 주어야 한다. 내가 즐겨 다니는 작은 산은 내가 즐겨 다니기 때문에 나의 것이다. 내가 산에 가는 일을 소홀히 하고 아카시아 꽃이 피든 장미꽃이 피든 그 산이 궁금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작은 산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주어진 것을 진실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늘 아끼고 가꾸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프리카 어느 밀림을 상속 받은 유럽의 왕자 같아진다. 자기의 것이기는 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둘러보면, 무척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땅이다.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다른 외국인이 갑자기 나타나 나가 달라거나 혹은 체류기간 연장 수속을 밟으라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아끼고 예뻐해 주어야 한다. 독도를 예뻐해야 하고 백두산과 녹둔도를 아끼고 쓰다듬어야 한다. 매일 사진을 바라보고 그리워하여야 한다.
지난 8월 15일 행사의 명칭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예뻐해야 할 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는 것을 읽었다. 주어진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기기 마련이다. 주어진 것은 아끼고 예뻐해야만 자기의 것이 된다. 미워하고 후회하면 결코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
김연신 한국선박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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