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에게 지난 주말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연락이 끊긴 지 꽤 된 고등학교 동문의 전화였다.
A 그룹 해외 지사에 근무한다는 그는 “우리 회사에서 앞으로 투자를 많이 할 계획을 착착 세우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 좀 봐 달라”고 ‘읍소’했다고 한다. A 그룹 총수는 8ㆍ15 특별사면 대상으로 ‘재벌 사면’ 논란의 당사자 중 한 명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주 “투자 하라고 사면해 줬는데 모른 체 해도 되느냐”고 압박하자 해당 기업들이 ‘발 빠르게’ 나선 것이다. 다른 당직자는 24일 “사면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지레 겁을 먹고 정치권과 연이 닿는 사내 인맥을 동원해 전화를 돌리는 것 같다”며 “기업 임원과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4, 5통 받았는데, 대략적 투자 계획을 설명하면서 ‘믿어 달라. 잘 부탁 드린다’고 납작 엎드리더라”고 전했다.
정치권과 재계의 관계가 관치경제 시대 때로 회귀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확충에 매진하라는 뜻”이라며 8ㆍ15 특사 명단에 재벌 총수 등 기업인을 다수 포함시켰다. 이후 한나라당은 일주일도 안돼 기업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박희태 대표는 21일 “재벌들이 수십 조 씩 쌓아 놓고 투자를 안 한다”고 비판했고, 차명진 대변인은 20일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기업이 꽤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두고 당이 경제 살리기 동력을 얻기 위해 민감한 ‘재벌 때리기’를 자처했다는 해석도 있고, 재벌 사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오버 액션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당직자는 “어쨌든 재계가 이토록 정치권의 한 마디에 민감할 줄 몰랐다”며 “일단 정치권에 잘 보여야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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