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비 지향 문화의 대명사이자, 정치에 무관심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23일 저녁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기습시위가 벌어졌다.
외국 명품점이 몰려 있고 외제차를 탄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찾는 로데오거리는 1987년 6월 항쟁은 물론, 그 이전과 이후에 단 한번도 시국 관련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곳이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23일 오후 8시께 대부분 20대 초반인 100여명의 시위대가 길이 150m, 왕복 2차선의 로데오거리를 점거하고 '이명박 정부 퇴진' 등을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회원들인 이들은 오후 7시 청계광장 집회가 경찰 봉쇄로 무산되자, 로데오거리로 몰려왔다. 이들이 집회 장소 변경 사실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전파하는 바람에 경찰은 시위대의 움직임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고, 시위 신고 접수 후에야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은 오후 8시40분께 700여명을 급파, 색소분사기를 쏘며 해산에 나섰다. 그러나 평소에도 차량으로 붐비는 좁은 도로에 시위대와 일반 시민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효과적인 대응은 하지 못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7명을 연행했지만 시위대 주력은 강남역쪽으로 빠져나가 오후 10시께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은 옷에 색소가 묻고 차량이 파손됐다며 경찰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촛불 시위대가 로데오거리를 선택한 데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경찰 대응이 전혀 없는 곳을 고른 측면도 있지만, 촛불집회에 관심이 없는 부유층 자제들에게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아고라' 토론방에는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게릴라 시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게시됐다. 23일 저녁 상황처럼 미처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기습 시위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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