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는 감탄이 터져 나오려면 어떤 맛이어야 할까? 그것도 한 세기를 아우르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입맛을 감동시키려면 대체 어떤 맛이어야 하는 걸까?
글쎄, 아마도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을 두루 갖추어야 하겠지.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으려면 담담하고 튀지 않는 맛이어야 할 것이야. 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는 여우같은 맛보다야 곰같은 맛이 오래도록 사랑받지 않을까?
입에 짝 붙어가며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여우같은 맛은 매일 먹기에는, 오래도록 먹기에는 왠지 무리일 것 같다. 투덕투덕 솔직한 내 남동생 같은 맛, 떡갈비는 그래서 백년째 먹어도 맛이 있다.
■ 담양 '신식당' 떡갈비
1909년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남 담양 '신식당'의 갈비 맛. 오래된 맛집에서 풍기는 자존심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각설, 떡갈비 맛만 두고 이야기해 보자. 한우 갈비살을 뼈에서 발라내 등심을 중점적으로 다지고 또 다져 차지게 만든 다음, 다시 뼈를 중심으로 처덕처덕 붙여가며 모양을 만든다.
식당 중앙에 놓인 평상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큰 칼로 나무도마에 고기를 치고 계시는데, 그 모양만 봐도 이 집에서는 쓰는 고기에 잡고기를 요만큼도 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닥토닥, 넓은 칼로 도마 두드리는 소리에 시장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면, 소복이 담긴 떡갈비가 상에 오른다. 떡갈비는 왜 떡갈비인가. 어릴 적에는 '간장 떡볶이'처럼 떡을 넣어 조린 갈비인가 하였다.
고기 살을 다지고 뼈에 다시 붙이기 용이하도록 고기 반죽에 찹쌀가루라도 섞기에 '떡'을 붙여 부르는가 생각도 했다. 또, 그럼 왜 멀쩡한 갈비를 다 뜯어냈다가 다시 붙여 굽는가? 떡갈비라는 맛깔진 이름의 메뉴를 두고 나의 궁금증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방마다, 떡갈비 장인들마다 대답은 분분했다.
어쨌든 옛날 떡갈비가 수라상에 오르던 시절, 왕이 갈비를 뼈채 잡고 뜯는 것은 품위가 없기에 젓가락만으로도 살점이 똑 떨어질 수 있도록 갈비를 '리모델링' 한 것이 그 유래였다는 설이 나는 제일 재미있다.
사실 돼지갈비든 소갈비든 맛은 있지만, 먹는 폼새가 예쁘지 않은 메뉴다. 특히 어려운 자리나 데이트할 때, 돼지갈비 한 점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어도 체면 상할까 조바심이 앞서게 된다. 그러니까 고기를 친절하게 다져서 다시 갈비의 모양으로 만든 떡갈비는, 맛은 맛대로 먹는 폼은 폼대로 챙길 수 있는 기특한 메뉴인 것.
담양 신식당 스타일의 떡갈비는 '남성적인 맛'이라 하겠다. 아기자기한 양념의 맛보다는 '고기 먹는 맛'으로 먹는다. 이미 한 번 다져 만든 육질이라고 하기에는 씹는 맛도 충실한 편이다.
달큰한 양념을 하지 않았지만, 불에 구웠을 때 불맛과 어울릴 만큼의 간장 양념을 하였기에 심심하지 않다. 그냥 먹어도, 쌈으로 싸도, 밥 한 술에 올려 먹어도 다 맛있다. 음식에 단맛이 넘치지 않으니, 복분자주를 곁들이면 궁합이 맞는다.
■ 해남 떡갈비, 광주 떡갈비, 동두천 떡갈비
광주의 경우, 송정동 광산구청 앞으로 떡갈비 골목을 이룰 만큼 맛있는 떡갈비집이 여럿 있다. 떡갈비는 맛난 것 많은 광주에서도 '광주 5미'(한정식, 김치, 떡갈비, 보리밥, 오리탕)에 꼽힐 정도로 이름난 맛.
떡갈비 골목 대부분의 집들이 소고기를 주로 하고, 약간의 돼지고기를 섞는데, 그래서 맛은 더 부드러운 편이다. 양념은 매콤하고 진한 광주 김치에 딱 어울리는 달콤짭쪼롬한 맛. 밥반찬으로 좋다.
해남의 그 유명한 '천일식당'은 내가 쓰는 칼럼마다 여러 차례 언급을 했었지만, 역시 떡갈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집이다. 암소 갈비살을 곱게 다져 양념, 석쇠에 가지런히 올려 바짝 굽는다.
아무래도 뼈에 다시 붙이지 않고, 평평하게 펴서 구우니 겉이 바삭하다. 바삭한 첫 맛에 촉촉하게 남아있는 속살 맛이 겹쳐져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된다.
양념은 담양 식보다는 진하고 광주 식보다는 연하다? 스타일이 제각각, 칼질 방법도 양념도 굽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령 재료를 완전히 달리 하는 '돼지 떡갈비'를 보자. 물맛 좋은 소요산 자락이 있어서일까? 동두천에는 맛있는 떡갈비집이 몇 있다. 그 중에 특히 '동천골'은 '돼지 떡갈비'로 지역 주민의 인기를 받는다.
일단 가격 면에서 부담이 덜하고, 맛도 있으니까. 돼지 떡갈비라 하면 왠지 소고기에 맛이 한참 못 미칠 것 같고, 고기 냄새도 날 것 같고 그렇다는 이들이 있지만. 내가 돼지 떡갈비를 처음 먹었던 곳은 낙원동의 어느 포장마차였다.
그때까지는 떡갈비란 무릇 소고기를 주인공으로 탁탁 다져 만드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손맛 좋은 아주머니와 자상한 아저씨가 부부 금슬 과시하시던 그곳에는 어느 밤에 찾아가도, 맛이 담담한 돼지 떡갈비와 막걸리 한 사발이 있었다.
소 떡갈비에 비해 기름이 적고 그래서 더 서민적인 맛. 양념하여 잘 치댄 돼지고기를 햄버거처럼 편편하게 빚어서 연탄불에 구워낸다면, 약주 잘 못하는 이들도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켜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같은 이름의 메뉴지만 지역마다 모양도 맛도 다르다. 그 유래도 '나인들에 의해서다' '유배된 양반을 따라서다' '우시장 근처여서 자연스레 생겨난 메뉴다' 등 의견이 여러 갈래다.
맛도 좋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빵빵하니까 외국인들에게 대접하기 좋다. 레드 와인과도 썩 잘 어울리니 샐러드, 수프 등을 먼저 내고 본식사로 떡갈비를 내는 '퓨전 코스'를 구성해도 색다를 것.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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