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의 최선참 김민재(35)는 쿠바와의 결승전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밤 갑자기 '집합'을 걸었다.
몇 시간 전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거둔 대역전승의 감흥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 그러나 김민재는 "2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한 후 정신이 해이해져 일본에 완패를 당했다"며 "이번에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며 후배들을 다독였다.
한국이 23일 9전 전승으로 올림픽 우승을 차지하자 많은 외신 기자들은 "금메달을 가져갈 만한 훌륭한 팀"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비결에 대해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는 한국 야구의 힘은 바로 이처럼 끈끈한 팀워크에 있었다.
사실 이번 대표팀은 해외파가 총출동한 2006년 WBC 때보다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하나로 똘똘 뭉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엄격한 선후배의 위계와 자율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끈끈한 단결력을 보여왔다. 특히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선수들 스스로 역대 최고라고 평한 조직력이 '1+1>2'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여기에는 평소 이름값 보다는 선수들의 의욕과 정신 상태를 강조하는 김경문 감독의 야구 철학이 큰 밑바탕이 됐다. 실제로 김 감독이 이끄는 두산이 시즌 전에는 항상 하위권 후보로 꼽혔지만 최근 4년간 2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 감독은 대표팀 최종 엔트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병규나 박재홍 등 과거 국제대회에서 명성을 날린 톱 스타들보다는 1, 2차 예선에서 고락을 함께 한 선수들을 대거 선발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같이 고생했던 아이들이 보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감독의 이 같은 믿음과 배려 속에 선수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특히 전체 24명 선수 가운데 병역 미필 선수가 14명이나 됐다는 점도 선수단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진만 김민재 진갑용 등 앞서 국제대회 입상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던 고참들은 후배들을 위해 더 열심히 치고 달렸다.
특히 본인은 정작 부상으로 군 면제를 받고도 국제대회에서 항상 결정적인 활약으로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손수(?) 해결해 준 이승엽은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팀의 정신적 기둥 노릇을 했다. 선수들은 올림픽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약속이나 한 듯 "역대 최고의 팀 워크"라 자평했고 선후배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공을 서로 돌리기에 바빴다.
김경문 감독은 "당초 4강 정도를 목표로 삼았는데 선수들이 초반 어렵게 이겨가며 팀워크가 더 좋아졌다"며 "특히 고참들이 후배들을 리드하면서 버팀목 노릇을 잘 해줬다"고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취재파일 - "미안하다, 오해했다"
기자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사상 첫 동메달과 금메달을 모두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이 세계 4강 신화를 창조하는 역사적인 순간도 지켜봤다.
운도 운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취재현장에서 지난 10년간 한국 야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8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7전 전패로 꼴찌에 그친 한국은 프로 최고 스타들이 망라된 드림팀을 구성, 설욕을 다짐했다.
한국은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10-2 대승을 거두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던 호주전에서 일격을 당한 후 3연패를 기록했다. 초반 4경기서 1승3패의 부진. 예선 탈락의 위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들의 '카지노 출입 사건'까지 터졌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태극전사들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특히 4강 진출의 가장 큰 고비였던 일본과의 예선 6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이승엽의 투런포를 앞세워 7-6 한 점차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일본과의 3ㆍ4위 결정전에서 다시 한번 뚝심을 발휘하며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솔직히 8년 만에 진출한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선 4강만 올라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과연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서 부담을 떨치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객관적인 전력도 쿠바나 일본에 비해 떨어졌다.
한국이 초반 파죽의 7연승을 거둘 때도 2년 전 WBC 예선에서 일본을 2번이나 이기고 결국 4강에서 패했던 순간이 오버랩됐다. 그러나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들은 기자의 어리석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김광현과 류현진?세계 정상급 타자들을 상대로 기죽지 않았다.
시드니 때처럼 본선에서 죽을 쓰던 이승엽도 비디오를 되돌린 듯 또 다시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쳤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8년 전과 공간만 바뀌었을 뿐 상황이 너무나 똑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최강 쿠바를 꺾고 태극기가 맨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우커송 구장을 가득 메운 한국 관중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베이징=이승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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