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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81세 조율사 이보정씨 "배고파 시작한 조율 58년, 여전히 音 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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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81세 조율사 이보정씨 "배고파 시작한 조율 58년, 여전히 音 고파"

입력
2008.08.2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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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조율에 58년을 바쳤지만, 100%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서울 노량진 자택에서 만난 조율사 이보정(81)씨는 성성한 백발에 하얀 눈썹까지, 별명 그대로 영락없는 '산신령'의 모습이었다. 조율이라면 이미 득도 했을 법도 한데, 그의 귀는 여전히 음(音)이 고프다. 은퇴 계획을 묻자 이씨는 "1927년에 태어났으니 나는 만년 스물 일곱인데 은퇴는 무슨..."이라며 허허 웃었다.

1951년부터, 그러니까 햇수로 58년째 피아노와 하모니카, 풍금 등 각종 악기를 조율해온 이씨는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1985년부터 6년간 국제조율사협회 부회장을 거쳐 91~93년 회장을 지냈다. 60년대 삼익피아노에서 생산부장, 공장장을 거친 경험을 토대로 피아노, 고전건반악기 쳄발로와 크라비코드 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조율사 외길 인생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수많은 인연을 빚어냈다. 국립극장에 기증된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피아노를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 가수 이승철의 피아노가 그의 손을 거쳐갔고, 십여 차례 내한 공연을 가진 이탈리아 실내악단 이무지치도 그가 만든 쳄발로, 그가 조율한 피아노로 무대에 섰다.

이씨를 조율사의 길로 이끈 것은 '배고픔'이었다. 황해 황주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유학 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혈혈단신으로 피란 행렬에 묻어 부산까지 갔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하모니카 장사를 시작했는데, 낡은 하모니카의 틀판을 깎아 음을 고치는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우며 자연스레 악기 조율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조율사가 극히 드물었던 시절, "악기 잘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풍금이며 피아노까지 봐달라는 주문이 들어왔고 그는 독학으로 본격적인 조율 공부에 매달렸다.

햇병아리 조율사 시절 이씨에게 '조율 바이블'이 되어준 것은 미국 화이트 박사의 <피아노 조율과 관련 기술> 일어판. 부인 김혜선(77)씨는 "조율사들에게 극진하게 밥을 대접해도 기술을 한, 두 개 가르쳐 줄까 말까 하던 시절, 이 책은 남편에게 구세주나 나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이 책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표지, 여기저기 찢겨진 책장에 발라놓은 누런 테이프에는 그의 50여년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씨가 유명해진 것은 조율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남들은 피아노 한 대 조율하는 데 1시간 남짓이면 되는데, 그는 2시간 반 이상을 매달린다. 건반을 다 들어내 속까지 청소하고, 줄에 슨 녹까지 말끔히 벗겨내기 때문이다.

완벽한 조율을 위해 악기 전체를 손질하는 것이다. 악기 안에 좀벌레가 사는 건 예사고 산 쥐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에게 조율을 맡긴 덕에 악기 속에 보관해뒀던 귀중품이나 돈을 찾게 된 손님들도 있었단다.

이 같은 정성 덕분에 한 번 그에게 조율을 맡긴 사람은 평생 그의 고객이 됐다. 꼬마 피아니스트가 어엿한 대학 교수가 되어 찾아오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 대규모 공연장도 그의 단골 고객이다.

제자도 숱하게 길러냈는데, 가장 특별한 제자는 1982년부터 98년까지 무상으로 가르친 시각장애인 40여명이다. "일본과 프랑스에 시각장애인 조율사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복지관에서 요청이 와 흔쾌히 승낙했지요. 실력을 제대로 갖춰 한 달에 1,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등 열심히 활동하는 제자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딸(47)과 대학생 손녀도 조율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부인 김씨는 "조율사가 정년이 따로 없어 좋아보였나 본데, 고작 세 줄을 맞춘 뒤 뻗기 일쑤"라며 "남편의 인내심과 꼼꼼함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요즘 조율사들은 대개 조율기를 사용하는데, 이씨는 여전히 "사람의 귀보다 정확한 것은 없다"고 고집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섬세한 귀를 가진 것에 대해 그는 "하늘이 준 축복"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직접 차를 몰고 출장을 다니는 그의 건강 비결은 규칙적인 세 끼 식사. 밥은 반드시 집에서 먹고, 반찬을 가리지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조율 일을 놓지 않겠다는 이씨는 "다시 태어나도 조율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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