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집단을 이루고 산다. 그리고 그 집단의 크기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주로 작은 동물을 잡거나 열매와 씨앗을 찾아 배를 채우던 수렵-채취 경제 시대에는 집단의 구성원 수가 100 명을 넘지 않았다. 고고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대체로 모든 사람이 평등했다고 한다.
경쟁은 불가피한 생존방식
농업이 발명되고 그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면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나뉘었다. 이따금씩 전쟁과 교역을 하기도 했지만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규모 무역이 성행하면서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수십억 인구가 모두 지구촌의 주민이다.
하지만 주고받는 영향의 질과 양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수렵-채취 시대에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알아보고 접촉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본 적도 없는 사람의 명령에 의해 투하된 폭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수렵-채취 시대의 조상들은 서로 사귀어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지금은 서로 겨루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쟁이 주요한 생존방식이다.
1953년에는 67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2만 달러를 넘긴 것이나 평등을 강조하던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사실은 이런 경쟁체제가 무척 효율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의 건강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1948년 46.8세이던 기대수명이 2006년에는 무려 79.1세로 늘어났다.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이 크게 증대된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한다고 기대수명이 무한정 길어지지는 않는다.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이 5,000 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소득과 수명이 비례관계를 보이지만 그 이상에서는 소득 증가가 기대수명의 증가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체의 생물학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사회학자들은 이것이 주로 소득의 격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 궁핍의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가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가졌는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흑인의 평균 소득은 1인당 2만 6,000달러로 우리보다 많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수명은 71.4세로 소득이 9,400달러인 코스타리카(77.9세)나 5,200달러인 쿠바(76.5세)보다 낮다. 이것은 4,700만 명이나 되는 미국인이 아무런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의료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인문학적인 설명도 있다.
소득의 격차가 큰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무척 크며 이것이 사회응집력을 떨어뜨려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건강은 물질적 요인에 의해서도 좌우되지만 사회 심리적 요인과 그것에 대한 인문학적 반응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건강의 결정요인이라는 말이다.
침팬지와 고릴라 등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서열이 낮은 개체는 서열이 높은 개체에 비해 모든 건강 지표가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인간 사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상호경쟁의 스트레스가 경쟁의 패배자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협력과 배려를 잊지 말아야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며, 경쟁의 강도 또한 무척 커졌다.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서열화된다. 노력은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불평등의 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인간 사회에서 경쟁은 분명 발전과 진보의 원동력이다. 다소간의 불평등은 경쟁과 건강의 활력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협력과 배려라는 균형추가 없는 불평등은 건전한 경쟁과 건강의 근거마저 위협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ㆍ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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