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동의보다 심의가 통제 강해"
정부는 여야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 합의과정에서 줄곧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 국회의 심의는 수입위생조건 고시에 대한 정부 권한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소지가 있고, 국제규범에 어긋나 이해당사국과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법제처는 21일 위헌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못박았다. 정부의 고유 권한인 고시의 효력을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제약하는 것은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고시는 어디까지나 정부 소관인데 국회가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석연 처장도 4일 국회 가축법 개정 특위에서 "위생조건에 대해 국회가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여야가 "동의보다 심의의 수위가 낮다"고 설명하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다. 심의는 국회의 심사, 의결과 같은 의미로 가부만을 결정하는 동의보다 훨씬 강력한 통제수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국회가 2000년 국회법 개정 때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행정입법의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한다는 조항을 넣으려다 위헌가능성이 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검토'(제98조의 2의 ②항)로 표현을 낮췄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회도 오래 전에 위헌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특히 통상마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잠정 중단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경우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한 것은 미국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광우병이 발생한 국가로부터 5년이 지나야 수입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과학적 근거가 명확치 않아 쇠고기 수출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만은 많지만 정부는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며 일단 한 발 빼는 분위기다. 문제가 있더라도 여야 합의에 저항해 다시 판을 깰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고려가 깔려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문제가 많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면서 "정치적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국회 "법적 검토·靑과 협의 거친 것"
여야 정치권은 21일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대한 법제처의 위헌 판단을 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위헌이 아니라는 논리도 조목조목 댔다. 야당은 "정부가 국회를 모독하려 한다"는 등 한층 강도 높게 비난했다.
정치권은 먼저 고시에 대한 국회 심의는 행정입법권 침해라는 법제처의 해석을 정면 반박했다. 한나라당 김정권 원내공보 부대표는 "만약 '국회 동의'였다면 위헌 소지가 있었으나 여야가 합의한 '국회 심의'는 강제적이지 않아서 위헌 소지가 없다"고 말했다.
가축법특위 위원인 민주당 김종률 의원도 "우리 헌법은 국회의 '동의' 사항에 대해서는 열거해 규정하고 있지만 '심의' 대상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때문에 국회가 법률로 '심의' 사항을 정할 수 있으며 이는 헌법 40조에 있는 국회의 입법권에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의가 동의보다 행정부의 권한을 더 침해할 수 있다는 법제처의 주장도 비판했다. 가축법특위 위원인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심의가 동의보다 엄격한 통제라는 것은 일반적인 법 해석과 거리가 멀다"며 "이는 심의의 구속력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동의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만 심의는 정치적 구속력만 갖는다는 뜻이다. 가령 심의를 통해 국회에서 반대 의결이 이뤄진다 해도 정부가 이를 강제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또 수입위생조건을 행정입법의 유형인 고시로 위임해 놓고 다시 국회 심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법제처 해석도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모법에서 범위와 한계를 정해 어떤 부분은 고시로 하고, 다른 부분은 국회 심의를 거치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문제 삼는 통상마찰 위험에 대해서도 여야는 "법적 검토를 충분히 해서 통상마찰 위험성을 최소화한 것"(한나라당), "행정부가 입법부 위에 군림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민주당) 등이라며 성토했다.
아울러 한나라당은 '당정, 당청간 협의도 하지 않았나'라는 비판을 의식, "법적 검토 뿐 아니라 청와대, 외교통상부, 농림수산식품부 등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가축법특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가 합의한 가축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표결(찬성 11, 반대 2) 통과시켰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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