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여섯 살인 우리아들, 어려서부터 통통한 편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 목욕을 시킬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니, 얘가 언제… 살이 이렇게 오른 거야?' 하긴 사내아아긴 해도 이제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30kg 가까이 나가니 그럴 만도 하지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 보는 사람들도 인사하자마자 제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얘 왜 이렇게 살이 쪘어? 몸 관리 좀 시켜야겠다. 소아비만이 성인비만 되는 거야."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스크림과 통닭입니다. 살이 찌는 음식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사달라고, 먹고 싶다고 조르면 결국 안 사줄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더라구요. 그리고 사실 저나 아이아빠도 통닭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래, 먹자 먹어. 그렇지만 우리 내일부터는 절대 먹지 말자. 알았지?" 약속을 해보건만 이게 끝이 없더라구요. "그래, 오늘까지만이야. 내일부터는 절대 안돼. 알았지?" 그렇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여섯 살짜리 아들은 30kg에 육박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도 찬바람 부는 겨울이나 봄에는 옷으로 몸매가 커버가 되었는데 이제 여름이다 보니 그 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더라구요. 아직은 유치원 친구들이 어려서 괜찮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뚱뚱하다고 놀릴 텐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체중조절을 시켜야겠다고 맘먹었지요. 그래서 아들을 앉혀놓고 인터넷으로 심하게 뚱뚱한 사람들 사진을 찾아 보여줬지요.
"너 이렇게 되고 싶어?"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구요. "지금처럼 매일 아이스크림 먹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러면 초등학교 가서 친구들이 막 돼지라고 놀릴거구…. 그래, 그런 거 싫지?"아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는 아이스크림 먹지 말자. 그리고 저녁은 여섯시에 먹고, 엄마랑 한시간 운동하고 와서 그 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는거야 알았지?" "엄마, 그럼 물도 안돼? 과일도 안돼?" 처음부터 너무 심하게 하면 역효과가 날것 같아서 "과일하고 물은 먹어도 돼. 그렇지만 여섯시 이후에 다른 건 절대로 안돼."
그렇게 철썩같이 아들과 약속을 하고 집에 과일을 사다가 놓았습니다. 수박, 참외, 자두 같은.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엄마, 나 팥빙수 먹고 싶어." "안돼! 그런 거 살찐다고 했잖아. 배고파? 엄마가 밥줄께.""엄마~ 한번만…, 응?" "안돼! 매일 한번만 한번만 하다가 이렇게 살찐 거잖아.""정말 안돼? 엄마 내가 너무 더워서 그래."이마의 땀까지 닦는 시늉을 하는 아들에게 "안돼!"를 외쳤습니다. 맘이 흔들렸지만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되었습니다. 여섯시에 밥을 먹고 난후 "자,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 물하고 과일은 먹어도 돼, 알았지?" 아들은 거의 세상에 낙이 없어진 듯한 얼굴이더군요.
그런데 제가 앞에서 엉덩이만 떼었다 싶으면 아이가 냉장고 앞으로 갔다가 저를 보고 흠칫 놀라는 겁니다. "뭐했어?" "엄마, 나 물먹었어…." 빨래를 베란다에 널고 왔는데 얘가 또 냉장고 주위에 있다가 들켰습니다. "너 뭐했어?" "엄마, 나 물먹었어. 엄마가 물은 먹어도 된다며." "왜 그렇게 물을 자주 먹니?" "더워서 그래."이상하다 싶어서 베란다로 나가는척하며 숨어서 지켜봤더니 세상에, 얘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는 겁니다.
아뿔싸, 며칠 전 애 아빠가 삼겹살을 먹은 뒤 마시고 남겼던 콜라가 그대로 냉장고에 있었던 겁니다. 잠시 방에 있다가 나가면 맨밥을 퍼먹었는지 밥통이 열려 있지를 않나. "이 밥통이 왜 열려있어?"하면 "난 모르는데"하는 아들이 참,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비만으로 건강 나빠지고 친구들한테 놀림 받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독한 맘을 먹고 있지만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애 아빠가 일 마치고 와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하겠다며 안주를 찾으면 그땐 이거 뭐 007작전을.방불케 합니다. 아들 눈에 띄었다가는 난리가 나니까 말이죠. 문 잠그고 방에서 조용히 먹으라고 차려서 작은 찜통 방안으로 상을 넣어 주지요. "엄마 아빠, 뭐해?" "응, 아빠 작은방에서 주무셔." "엄마, 그런데 무슨 맛있는 냄새 안나?" "아니. 안 나는데. 아~ 옆집에서 뭐 먹는가 보네." "그래? 엄마, 나 아빠얼굴이 갑자기 한번 보고 싶어." "안돼! 들어가지마. 아빠 주무시다 깨시면 잘 못 주무신단 말야." 그러면 아들은 의혹의 눈빛을 멈추지 않고 "아니, 아빠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못해서 그래." "야! 그럼 지금 주무시고 계신데 깨워서 안녕히 주무시라고 할거야?" 그리고는 "너도 빨리 자!"라며 아이를 큰방으로 밀어넣습니다.
어제는 밤 열시가 넘어선 시각에 아들이 너무너무 통닭이 먹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온갖 애교를 피워댑니다. 애 아빠가 "안! 물이나 한잔 먹고 자!"라고 소리를 치자 우리 아들 거실에 큰대자로 누워 울면서 글쎄 뭐라는 줄 아세요? "으앙… …, 물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물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계속 같은 말을 연발하면서 서럽게 펑펑 우는데 웃음도 나오고, 아이구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참, 또 뭐라고 하는지. "엄마, 내 소원은 먹을수록 살이 빠지는 거야. 진짜 먹을수록 살이 빠지면 좋겠다." 이러는데 휴~. "그럼 이담에 커서 그런 거 발명해봐. 먹을수록 살이 빠지는 그런 방법."
며칠 있으면 유치원에서 수영장에 간다는데 그러면 이제 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텐데…. 친구들이 우리 아들의 뱃살을 보고 놀리지나 않을지, 정말 걱정입니다.
전북 전주시 삼천동 오진숙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