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050원선이 당국의 '누르기 개입'이 있은 지 하루 만에 21일 힘없이 뚫렸다.
전날 1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으며 환율을 1,050원선 아래에 가뒀던 외환당국은 이날 방어선 사수를 포기한 듯, 끝내 나서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24시간도 채 버티지 못할 환율방어를 위해 애꿎은 외환보유액 10억달러만 날린 셈이 됐다. 시장은 '사방에 상승요인이 가득한 상황에서 하루 만에 손 뺄 개입은 왜 했는지'를 의아해 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5.6원 오른 달러당 1,054.9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05년 10월 25일(1,055.0원) 이후 2년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1,048원으로 출발해, 하루종일 1,051원선에서 당국의 눈치를 보다 개입기미가 없어 보이자 막판 20분동안 4원 가까이 급등했다.
사실 환율상승은 당연한 결과다. 최근 지속중인 달러화 강세, 외국인의 주식매도세, 정유사의 달러 결제수요 등에 더해 며칠 새 부쩍 높아진 글로벌 신용경색 악화 우려로 당국의 개입만 빼면 온통 상승요인으로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상승추세를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에서 당국이 결국 1,050원 선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단 하루 만에 달라진 당국의 정책판단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A사 관계자는 "당국도 달러 강세가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며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만약 1,050원선을 한 번 지켜보자는 차원에서 하루에 1조원 이상을 쓰고는 다음날 '아니면 말고' 식의 행태를 보인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에 여유가 없어 더 이상의 개입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7월 100억달러 이상을 쓰고도 한 달만에 제자리로 온 환율에 보유액을 또 쏟아 붓기는 비판여론의 부담이 크다. 여기에 유로화가 강세일 당시 보유액 감소분을 상쇄했던 환차익이 최근에는 반대 상황으로 돌아서 여유분이 더욱 줄었다는 것이다.
잦은 시장개입으로 실탄을 소진, 결국 당국 스스로 운신폭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환율을 1,050원 아래로 확실히 묶으려 했다면 최근 며칠 동안 30억~40억달러는 썼어야 할 상황"이라며 "어제 개입도 한정된 자원을 투입해 봐서 효과가 있으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당국이 더욱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시장흐름을 역류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C사 관계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국의 신용위기가 본격화되면 우리나라 같은 이머징 마켓에 달러 유동성이 먼저 줄어들 게 뻔하고 더더욱 외환보유액은 소중해지는 상황"이라며 "여러모로 당국이 불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수 시장 참가자들은 일단 '천장이 뚫린' 환율이 앞으로 1,080원선까지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10대 외환보유국중 한국만 보유액 감소
세계 10대 외환보유국 가운데 올 들어 유독 한국만 보유액이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스스로 올린 환율을 다시 끌어내리기 위해 최근 달러를 대거 내다 판 결과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475억달러로 지난해 말(2,622억달러)보다 147억달러 가량 줄었다. 지난달 초 물가안정을 위한 시장개입을 선언한 뒤, 보유액 150억달러 상당을 쏟아부은 것이 주원인으로 개입이 지속된 8월에도 보유액은 더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은 올 6월말 현재 1조8,088억달러로 작년 말(1조5,282억달러)보다 2,806억달러가 늘었다. 일본과 러시아(올 7월말 현재)는 작년 말보다 각각 281억달러와 919억달러나 늘어났으며 대만 홍콩 싱가포르 브라질 등 한국을 뺀 상위 10대 보유국 모두 외환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보유액의 '나홀로' 감소는 원ㆍ달러 환율의 '나홀로' 상승과 관련이 깊다. 최근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기 전까지, 원ㆍ달러 환율은 정부의 용인 속에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홀로 급등했다. 가뜩이나 원유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에서 고유가에 환율 상승까지 겹치자 물가상승 압력을 견디다 못한 정부가 결국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라도 물가잡기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표한형 연구위원은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해도 아직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한꺼번에 100억달러 이상이 감소하면서 전반적인 대외 신인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올해만 놓고 보면 한국만 유독 감소했지만 최근 5년간 외환보유액은 2배 이상 늘어날 만큼 독보적인 증가세를 보여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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