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축사에서 내놓은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를 새로운 60년 성장동력으로 삼아 에너지ㆍ경제위기의 타개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그 시대적 의미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양적 성장방법으로 파악
녹색성장의 개념은 이미 서구선진국에서는 미래사회비전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발전전략이다. 특히 교토(京都)의정서가 발효된 이후 유럽국가들은 모든 기술 개발의 기준을 지속 가능성에 맞출 만큼 시스템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녹색성장은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대통령의 발표 그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정부가 시대에 맞지 않는 성장개발주의 정책만을 고집하던 차에 나온 것인지라 그 현실성과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녹색성장은 고속도로를 만들고 집을 지을 때처럼 리더의 지시와 건설투자만으로 후다닥 실현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녹색성장에 필요한 새로운 차원의 기술혁신과 생태적 현대화는 장기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에너지효율이 90%를 넘는 독일의 고효율 열병합발전기술은 1973년 1차 석유위기 직후부터 꾸준히 연구개발을 계속해온 결과물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지속적 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풍력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 형편이다. 녹색기술이 선진국보다 뒤떨어진 한국이 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녹색성장은 또한 에너지원의 변화나 기술교체만으로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시스템 전반의 지속 가능한 변화를 요구한다. 에너지와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산업시스템과 철학, 삶의 양식이 낳은 산물이면서 이들의 변화를 결정하는 중심요소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준비와 정책 실행이 수반돼야 한다.
태양의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녹색 전환에 장기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현재의 녹색도시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에너지원을 태양광으로 교체해 건설된 작품이 아니다. 1970년대에 원전 도입을 온몸으로 막아냈던 시민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구축한 지속 가능한 대안사회다. 시민들이 태양광단지보다 에너지 절약을 중심에 두면서 자연과 공존하고 성장하는 삶의 구조에 더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발표를 눈앞에 둔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무색한 것 같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가 28% 이상 증가할 것에 대비해 26%인 원전설비 비중을 40%대로 늘릴 계획이다. 10기 이상의 원전이 추가 건설되며 원자력 공급에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다.
신재생 에너지의 목표치는 2030년까지 9~11%에 불과해 녹색성장 사회를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심의제가 되어야 할 절약과 고효율의 질적 사회 구축 또한 공급과 에너지확보의 논리에 밀려 주변에 머물러 있다. 지속 가능한 신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언급은 발견할 수 없다.
개발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을
대통령이 화두를 꺼내 든 이상 녹색 성장 추진은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연일 보도되는 부동산 개발정책이나 시장만능주의적 경기부양책을 접하면서 정부가 여전히 양적 성장을 위한 수단의 하나 정도로 녹색시장을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개발에 대한 근본적 인식전환 없이 녹색전환은 불가능하다. 8ㆍ15 경축사를 계기로 정부정책에 진정한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다.
임성진 전주대 사회과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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