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이렇게 다 가버렸네요." 인생무상이라 했던가. 세월의 깊이는 신옥분(74) 할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배어있었다.
경북 영양 출신인 그는 20세 때 남편 얼굴도 모르고 이웃 마을로 시집을 왔다. 신혼의 꿈에 부풀었던 새 색시의 설레임은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집안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 50년 넘게 힘든 인생의 족쇄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병치레가 잦았다. 남편은 23년간 신경질환으로 모진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등졌다. 시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14년간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줬고, 시어머니는 중증의 관절염으로 20년간 제대로 걷지도 못하다가 이승을 하직했다. 지금도 제대로 된 의료시설을 찾기 힘든 경북 영양의 산골마을에 당시 변변한 병원이 어디 있었겠는가.
"지금이야 누가 그렇게 살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그 때는 숙명이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몸이 피곤한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시댁 식구들의 병원 치료비를 대느라 논 마지기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래 전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더운 날씨 탓일까. 신 할머니는 연신 부채질만 했다.
그래도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포스코가 새로운 삶의 타전을 마련해준 덕분에 마음이 더없이 편하단다. 일조량이 많아 고추 산지로 유명한 경북 영양군 현2리. 마을 입구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고추밭 한 쪽에 설치된 '모듈 하우스(조립식 완성주택)'가 눈에 띈다. 포스코가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로 지어준 신 할머니의 집이다.
할머니는 1년 6개월 전만 해도 산 기슭 바로 밑에 있는 낡은 초가집에서 홀로 생활했다. 방고래 위에 깔린 구들장 일부는 무너져 내렸고, 누더기처럼 해어진 흙벽은 흉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당시를 회상하던 할머니는 "짐승이 제일 무서웠다"고 했다.
먹이를 찾기 어려운 겨울철이면 멧돼지들이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부엌까지 들어왔고, 고라니는 친구나 되는 양 무시로 나타났다. 살쾡이는 소리만 들어도 겁이 덜컥 날 만큼 소름이 끼쳤다. 혼자 사는 것도 어려운데, 긴 겨울밤 짐승소리와 삭풍은 신 할머니를 더욱 힘들고 외롭게 만들었다.
"너무 고맙죠. 이렇게 새 집을 지어줘서 사시사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찬바람 맞을 일 없고, 여름철에도 그렇게 덥지 않아요." 실제 한낮 최고온도가 36도까지 올라간 13일, 기자가 찾아간 신 할머니 집안은 폭염에도 생각보다 덜 더웠다.
도시에서 싱글족이 주로 생활하는 원룸 크기라, 노인 홀로 생활하기엔 공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내가 작아 난방비가 덜 들고, 내부 이동거리도 짧은 장점이 있다.
포스코 사회공헌실 박상희 과장은 "모듈하우스는 실 평수 6.5평 규모로 큰 편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집을 짓는다는 차원에서 고급 재료를 사용했다"며 "기름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에 올 하반기 보육원 등에 공급하는 주택에는 태양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장치를 장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신 할머니는 기자와 함께 찾은 포스코 직원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생활비 마련은 여전히 무거운 짐이다. 한 달에 열흘 정도 고추밭에서 일해 받는 돈은 불과 30만원. 요즘은 이마저도 벌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야 품을 더 팔고 싶지만, 요즘과 같은 폭염에 고추밭에서 일하다 쓰러질까 두려운 탓이다. "나이가 많고 날씨도 무덥다 보니 일하러 나가기가 조심스럽네요." 그런데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부산에서 주차관리 등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아들(51)은 가족 생계를 이어가기도 빠듯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46)도 있지만, 다니는 회사가 어려워 몇 개월째 월급을 받질 못하고 있다. "자식들 모두 어렵게 살고 있는 터라 할머니 혼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게 현2리 김원백(55) 이장의 설명이다.
그래도 성격이 낙천적인 신 할머니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새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단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것만도 복 받은 것이죠. 농촌에는 혼자 어렵게 사는 노인들이 많은데, 포스코처럼 도움을 주는 기업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기자에게 신 할머니는 "점심은 먹고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손을 붙잡았다. 아쉬운 표정의 할머니를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세월이 이렇게 다 가버렸네요"라는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 포스코 '사랑의 집짓기'
포스코의 나눔 활동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그 열정은 어느 기업보다 크다. 지난해 사회공헌활동에 지원한 금액은 영업이익의 2.2%인 965억원. 웬만한 기업의 한 해 매출액 수준이다.
포스코는 국가기간산업으로 출발했다. 여느 기업과는 달리 지역, 사회, 국가 발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이제 포스코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속가능 경영의 한 축이자 새로운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특히 포스코가 애착을 갖고 지원해온 사회공헌활동이 '사랑의 집짓기(해비타트)' 운동이다. 무료 급식이나 성금 전달 등은 말 그대로 '지원'으로 끝날 때가 많지만, '사랑의 집짓기'는 그렇지 않다.
다른 봉사활동과는 달리, 오히려 지원 이후에 관심이 더 커진다. 지원 받지 못한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대상자 선정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아직 지원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공헌활동인 셈이다.
포스코는 '사랑의 집짓기' 첫 해인 2006년부터 작년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협의를 통해 선정한 국내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총 20채를 지원했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집은 공장에서 주문형태에 따라 만들어 주택이 들어설 장소로 통째 옮겨져 설치되는 '모듈(Module) 하우스'. 외관은 '콘센트 건물'과 비슷하지만, 고강도 철과 값 비싼 단열ㆍ보온재를 사용해 일반 주택과 거의 차이가 없다.
올해에는 사회 진출을 앞둔 보육원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집을 지어줄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들이 모듈 하우스에서 공동 생활을 하며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모듈 하우스에 들어가는 난방장치도 업그레이드했다. 등유 보일러에서 전기 보일러로 바꿨고, 올 하반기에는 태양열ㆍ태양광 시스템을 이용한 온수 및 전기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포스코는 해외에서도 '해비타트 운동'(무주택자를 위한 집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6년부터 포스코 임직원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원을 인도 뭄바이 등에 파견해 수백 채의 집을 지어줬다.
포스코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과 광양에서는 집 수리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봉사단이 매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집을 수리해준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사랑의 집짓기' 외에도 노인ㆍ장애인 목욕봉사,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도, 음악치료, 인명 구호, 의료ㆍ위생봉사 등 240여개의 자원봉사 그룹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특히, 임직원과 배우자의 봉사활동 장려를 위해 '봉사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영양=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