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가수로 3년을 보내고 몇 년 후 이어진 군 생활 2년. 스물아홉의 김범수는 어쩌면 자신이 품은 가수로서의 이력을 보고 많은 '여백'을 느꼈을지 모른다. 지난 3월, 스타의 제대치곤 조용한 복귀 이후, 그는 그래서 절치부심했을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기획사)에 뿌리를 내리며 그동안의 빈 공간을 채워줄 앨범을 위해, 그리고 대중의 뇌리에 흐릿해진 '김범수 보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는 녹음에 몰두했다.
19일 내놓은 6집 앨범은 그래서 김범수의 욕심으로 가득하다. '보고 싶다' '하루'로 달성한 발라드의 '디펜딩 챔피언' 답게 한층 애잔해진 보컬, 여기에 트렌드를 수용한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시도가 어울렸다. 15곡으로 꽉 찬 트랙 리스트는 성숙한 뮤지션의 외피를 드러낸다. 앨범 발매 하루 전 만난 김범수는 군 생활의 득실을 먼저 얘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속을 다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박광현, 윤계상, 지성 등과 함께 생활하며 그야말로 사람을 얻었죠. 사실 음악적으론 그냥 '공회전'을 유지한 시간이지만 득이 많았어요."
그는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5집 앨범을 만들고 후다닥 입영열차에 올랐다. 활동도 프로모션도 없이 대중을 떠났다. 그리고 2년 후 낸 이번 음반은 보컬리스트로서의 궤도를 충실히 지키면서도 다양한 장르를 덧붙여 변화를 강조했다.
"국한되어 있던 저의 이미지, 장르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예전엔 농후하고 감정이 깊은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했지만 이번엔 좀 더 젊은 층을 겨냥해 힙합, 팝댄스 등을 시도했어요. 원래 저를 좋아했던 팬의 취향을 잊어선 안 되지만, 가수로서 고인 물이 되고 싶진 않았죠."
김범수는 5집에 이어 이번에도 황찬희와 손을 잡았다. 김종국의 '한남자'로 이젠 스타급이 된 작곡가이며 프로듀서인 그는 김범수와 서울예전 동기이다. 윤일상, 주석, 원더걸스의 유빈, 윤하가 앨범에 참여해 스펙트럼을 넓혔다.
"타이틀곡인 '슬픔활용법'은 이전의 제 히트곡들과 분위기가 유사하지만 더 시원하게 가창을 한 곡입니다. 감정을 더욱 자제하고, 끈적한 맛은 좀 없지만 호소력이 많이 묻어납니다. 후속곡으로 생각하는 '굳은살'은 '보고 싶다'의 맥을 잇는 곡으로 이해하시면 되고요."
그는 2001년 '하루'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한국 가수가 됐다. 2003년엔 미 국회의사당 커커스 홀에서 공연을 한 첫 한국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범수는 당시의 빠른 상승기류를 그리워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땐 멋모르고 해외시장에 뛰어들겠다 생각했지만, 이젠 달라요. 충분히 완벽하다 느낄 때 도전할 겁니다. 저의 가수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보자면, 완만한 산을 올라온 것 같아요. '보고 싶다' 이후 활동에 비해 사랑을 못 받았지만 타격은 아니었고, 최고의 전성기를 뛰어넘는 것보다 계속 낮은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내년이면 데뷔 10년이지만 그에겐 여전히 초창기의 '얼굴없는 가수'의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극도로 외모위주인 마케팅이 범람하던 시절에, 오직 보컬로만 승부해 정상에 올랐던 그는 지금의 음악 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에 가기 전보다 훨씬 음반의 가치가 퇴색되어 있어요. 디지털 싱글로 음원 수익에 의존하는 모습이 씁쓸하죠. 이렇듯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에 빨리 발맞춰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제가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해서인지 좋지 않은 모습들이 보이네요."
김범수는 10월부터 소극장 공연을 이어간다. TV출연도 주로 라이브 무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와 같은 훌륭한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따라가는 게 평생 숙제입니다. 이승철, 인순이 선배처럼 한 개의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가수로 자라고 싶어요."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사진=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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