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열기에 금세 묻혔지만, 지난달 30일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첫 주민 직접 선거가 남긴 의미는 자못 크다. 서울 시민들은 공정택 현 교육감을 '교육 대통령'으로 선택했다는, 단순 결과를 뛰어 넘는 여러 메시지를 이번 선거는 생생히 전하고 있다.
선거에서는 승자만이 살아남는다. 74세의 공 교육감은 진보 진영이 의기투합해 민 58세의 주경복 건국대 교수에게 말 그대로 '신승'했다. 공 교육감 스스로 "결과가 이렇게 박빙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초접전 양상이었던 교육감 선거의 일등 공신은 조직력도, 현직 교육공무원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도 아니었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개구 아줌마들 몰표에 공 교육감은 만세를 불렀고, 주 교수는 땅을 쳤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 교육감에게 이번 선거는 진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8개 구에서만 주 교수를 앞섰을 뿐이다. 3분의 2 이상의 구가 공 교육감을 외면했지만, 강남권의 몰아주기표와 중.용산구 등 일부 지역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기사회생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주 교수는 입을 굳게 닫고 교단으로 돌아갔다. 반면 선거에서 승리한 공 교육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물 보따리 하나를 풀어 놓았다. 당선 후 그가 꺼낸 첫 카드는 국제중 신설이다. 2009년에 서울 지역에도 국어 국사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국제중 2곳을 개교토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국제중 신설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관련 법률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교과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추진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뒤로하고 공 교육감이 국제중 신설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몇가지 있다.
공 교육감으로서는 1년 10개월에 불과한 임기(지방교육자치법 개정에 따라 차기 교육감 선거는 2010년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승부수를 던진 측면이 크다. 짧은 임기 중에 자신의 공약을 실행에 옮기고, 전국교직원노조로 대표되는 '반(反) 공정택'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전교조를 파트너로 안고 가겠다"던 당선 직후의 약속을 스스로 깬 것이지만, 그를 지지했던 시민들이 원한다는 국제중 개교가 훨씬 급해 보였다.
또 하나는 안병만 신임 교과부 장관에 대한 기대다. 그는 안 장관이 자신과 '코드'가 맞다고 판단하고 있다. "교육에도 자율과 경쟁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안 장관이 국제중 신설을 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국제중 신설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게 공 교육감의 생각이다.
그는 "나의 교육철학을 지탱해주는 요소는 경쟁"이라는 말을 입버릇 처럼 하고 있다. 경쟁이 없는 한 교육도 없다는 일관된 소신을 갖고 있다. '성공한 1호 민선 교육감' 기록 역시 염두에 둔 듯 하다.
교육계는 공 교육감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주시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교육의 상대성 원리 때문이다. 파트너를 배제한 교육정책은 출발은 할 수 있어도, 순행(順行)이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범한 진리는 여러 차례 목도됐다. '승부사 공정택'의 행로는 그래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김진각 사회부 차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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