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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푸른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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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푸른 곰팡이

입력
2008.08.1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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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편지 한 장을 들고 우체국까지 산책을 나설 줄 아는 사람은 강물 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기울이거나, 할 일을 잃고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체통을 안쓰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몇 초면 될 것을 사나흘이나 기다리다니! 편지 한 통을 위해 우체국까지 걸어가는 수고로 시간 낭비를 하다니! 하지만 이 더디고 더딘 시간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열린 간절함이 너와 나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한다.

너와 내가 경계를 허물고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발효의 시간이란 기다림과 그리움을 효소로 익어가는 관계의 시간이다. 관계는 공간에 틈을 벌리고, 시간에 뜸을 들일 때 생겨난다. ‘틈과 뜸’이 있어야 꿈이 익어가는 것이다. 산책은 ‘틈과 뜸’의 다른 이름이다.

한 통의 편지를 보낸 뒤 일 주일 내내 목을 빼고 우체부의 자전거 구르는 소리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많고 많은 자전거 소리 중에 우체부의 자전거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 특별한 귀를 잃어버리면서 나도 우리들 사이에 흐르는 푸른 강물 소리를 잃어버렸다. 우체통의 경고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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