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elps Breaks Tie with Spitz, Winning 8 Golds
BEIJING (AP)- Michael Phelps locked arms with his three teammates, as though they were in a football huddle calling a play, then hugged each one of them. It took a team to make him the grandest of Olympic champions. And one last big push from Phelps himself.
* lock arms with: 어깨를 맞대다 ( = join arms tightly with the arms of the people on either side)
Ex) The police locked arms to form a barrier against the protesters.
* huddle: 작전회의 ( = a group of players in American football who gather around one player who tells them the plan for the next part of the game
베이징 (AP) - 마이클 펠프스는 마치 미식축구 중 작전을 짤 때 하는 것처럼 세 명의 팀 동료들과 어깨를 맞대고 나서 선수 하나 하나와 포옹을 했다. 그를 가장 위대한 올림픽 챔피언으로 만드는 데에는 팀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 돌격은 펠프스 자신에게서 나왔다.
Going hard right to the end of a mesmerizing nine days in Beijing, Phelps helped the Americans come from behind Sunday (Aug. 17) in a race they've never lost at the Olympics, cheering from the deck as Jason Lezak brought it home for a world record in the 400-meter medley relay. It was Phelps' history-making eighth gold medal of these games.
* mesmerizing: 홀리게 하는
베이징에서 9일간 끝까지 황홀경에 빠뜨린 펠프스는 일요일(8월 17일)미국이 한번도 져보지 않은 경기에서 미국팀이 역전하는 것을 도왔다. 그는 제이슨 레잭이 400m 혼계영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이를 자국으로 가져오자 단상에서 응원했다. 이는 베이징 경기에서의 펠프스의 역사적인 여덟 번째 금메달이었다.
"Everything was accomplished," he said. "I will have the medals forever."
그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며 "메달들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Phelps sure did his part to win No. 8, eclipsing Mark Spitz's seven-gold performance at the 1972 Munich Games.
* eclipse: 능가하다, 빛을 가리다 ( = surpass; overshadow)
펠프스는 틀림없이 8관왕을 달성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 했으며 이는 마크 스피츠가 1972 뮌헨올림픽에서 따 낸 7관왕의 신화를 능가하였다.
Aaron Peirsol got the Americans off to the lead in the backstroke, but Brendan Hansen — a major disappointment in this Olympic year — slowed them down with only the third-fastest breaststroke leg.
* get sb off to the lead: ~을 제치고 선두로 나서다
아론 페어솔은 배영으로 미국팀을 선두로 시작 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큰 실망을 안겼던 브랜던 핸슨이 평영을 3등으로 들어오며 팀이 뒤쳐지게 했다.
By the time Phelps dived in for the butterfly, the U.S. was trailing Australia and Japan. That's when he really went to work.
펠프스가 접영을 위해 물 속에 뛰어들었을 때 까지,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뒤에 쳐져 있었다. 그때 바로 그가 정말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With his long arms whirling across the water like propellers, Phelps caught the two guys ahead of him on the return lap and passed off to Lezak a lead of less than a second for the freestyle. The Australians countered with former world record-holder Eamon Sullivan as their anchor.
* anchor: (수영 릴레이에서) 최종 주자
그의 긴 팔을 프로펠러처럼 물살을 가르며 펠프스는 후반 50m에서 앞서던 두 선수를 제치고 자유형 선수인 레잭에게 1초가 채 안 되는 선두자리를 건네 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 팀은 그에 맞서 전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에몬 설비번을 최종 주자로 내보냈다.
"I was thinking not to blow the lead," Lezak said. "I was really nervous."
레잭은 "선두자리를 날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며 "정말 긴장 되었다"고 말했다.
Sullivan tried to chase down Lezak and appeared to be gaining as they came to the wall, but Lezak finished in 3 minutes, 29.34 seconds — Phelps' seventh world record in his personal Great Haul of China.
설리반은 레잭을 따라잡으려 사력을 다 했으며 결승점에 이르자 이긴 듯 싶었지만 레잭이 3분 29.34초에 들어와 펠프스가 중국에서의 개인 최대 성과인 7번째 세계신기록이 되었다.
The Aussies took silver in 3:30.04, also under the old world record of 3:30.68 set by the U.S. in Athens four years ago, while Japan held on for the bronze.
* hold on for: 을 사수하다, 지키다
오스트레일리아도 전 세계기록인 3분 30.68초 보다 빠른 3분 30.04초를 기록했으며 일본팀은 동메달을 지켰다.
Phelps leaned over the blocks, looking to make sure Lezak touched first. Assured the Americans had won, he thrust both index fingers in the air, pumped his right arm and let out a scream. Peirsol also yelled and slapped Phelps in the chest.
* let out a scream/cry/roar: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 (=suddenly make a loud sound)
펠프스는 레잭이 확실히 1등으로 접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블록에 기대고 있었다. 미국팀에 이겼음을 확신하자 펠프스는 양 집게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 들어올리더니 오른쪽 팔을 들어 펌프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페어솔 역시 소리를 지르며 펠프스의 가슴을 쳤다.
Spitz's iconic performance was surpassed by a swimmer fitting of this generation: a 23-year-old from Baltimore who loves hip-hop music, texting with his buddies and wearing his cap backward.
스피츠의 우상적인 기록이 23세의 발티모어 출신으로 힙합을 좋아하고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모자를 거꾸로 쓰는 지금 세대에 딱 맞는 수영선수에 의해 깨졌다.
■ 8월15일 Korea Times 사설 | On August 15 (8월 15일을 맞아)
Nation Ought to Seek Mature Democracy, Sound Capitalism(우리나라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건전한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Korea has observed National Liberation Day as its biggest holiday, like most other countries de-colonized after World War II.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은 광복절을 최대의 국경일로 지켜왔다.
This year will be no exception _ only the government seems set to celebrate Friday more as the 60th birthday of the Republic of Korea than as the 63rd anniversary of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So, what's the big fuss? Some people might say indifferently, thinking the figure of 60 is easier to remember than 63.
금년도 예외는 아니지만 다만 정부가 금요일을 일제 통치로부터 해방된 63주년 보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60주년으로 기념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게 뭐 대수냐고 어떤 이들은 무관심하게 말하고는 숫자 60이 63보다는 기억하기 좋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It's not that simple, actually. The conservatives, who stick to South Korea's birthday, call the day the 60th anniversary of ``national foundation." But the progressives, who seek modern Korea's roots i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March 1919 and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set up a month later, criticize this as a plot to deny their ancestors' independence fight as well as the nation's spiritual identity.
사실은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남한의 정부수립 기념일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이 날을 "건국" 60주년으로 부른다. 그러나 근대 한국의 뿌리를 1919년 3월의 독립선언과 한 달 후에 수립된 상해임시정부에서 찾는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조상들의 독립 투쟁과 나라의 정신적 정체성을 부인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한다.
Legally speaking, the conservatives' assertion has some truth in it, as a nation must have three essential elements of people, land and sovereignty. Without the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liberated Korea could not claim its right to establish its own government so soon. In addition, Korea has an ``original" National Foundation Day on Oct. 3, according to its semi-mythical origin of B.C. 2333. Why should we curtail our history from 5,000 to 60 years?
법적으로 말하면 보수파의 주장이 일리가 있기도 한 것이 나라라는 것은 국민과 국토 그리고 주권의 세가지 필수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해방된 한국이 그리 빨리 자신의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기원전 2333년의 신화에 가까운 기원에 따른 "진짜" 건국기념일이 10월 3일에 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5,000년에서 60년으로 단축한다는 말인가?
It needs to be made clear, once and for all, that the nation was not founded on this day, but that the first South Korean government was established in 1948. The United States, many Korean conservatives' spiritual utopia, regards the day of it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n July 4, 1776 as its national foundation, not April 30, 1789 when it established the federal government.
이날은 우리나라가 세워진 날이 아니라 남한의 첫 번 째 정부가 수립된 날임을 분명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많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정신적 이상향인 미국도 연방정부가 수립된 1789년 4월30일이 아니라 독립선언을 한 1776년 7월4일을 건국 일로 삼고 있다.
It is clear what the conservatives have in mind by emphasizing the 60-year version: capitalism and industrialization have made the country what it is today. The progressives, on the other hand, want to see it as the history of democratization by driving out dictatorship.
보수주의자들이 60년 설을 강조하는 속내는 뻔한 것이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이 기간을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룩한 역사로 간주한다.
How long should we remain mired in this consumptive ideological battle, however? Can't we just recognize both industrialization and democratization? This is one of the few _ if not the only _ countries that won independence after World War II and attained both in just two generations. It would be funny if we keep overly boasting it, but this is nothing to feel disgraceful about, let alone torment ourselves over.
그러나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 소모적인 이념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어야 할까? 산업화와 민주화를 둘 다 인정할 수는 없는 걸까? 이 나라는 2차 대전 후 독립된 나라 들 중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룩한 유일국가는 아니더라도 몇 안 되는 나라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이를 자랑하고 있어도 우습겠지만 절대로 부끄러워 하거나 일부 외국인들이 말하듯 자학할 일은 더욱 아니다.
There can of course be no future without the past. But by dwelling upon the days gone by too much, one cannot go forward. President Lee Myung-bak was right when he stressed national harmony and a joint march to the future.
물론 과거가 없이 미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에 머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적 화합과 미래를 향해 다 함께 나아가자고 한 것은 맞는 말이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