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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선수들이여 이젠 울지 마라

입력
2008.08.1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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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배달 영감 집에 경사 났다. 어머니가 안 계셔 누님이 뒷바라지를 해 왔는데 이제야 보람을 찾게 됐다." 1984년 8월 8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엔 유도에서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안병근 선수의 사연이 실렸다. LA올림픽 당시 국내 취재팀에서 유도 종목을 담당했다.

대구 칠성시장 골목 구석진 곳, 높은 돌담 아래 허름한 집, 작은 대문을 들어서자 풍겼던 간장 냄새를 기억한다. 구석에서 눈물만 흘리던 누님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 '간장 장수 아들'이, '누님의 동생'이 지금 베이징에서 한국 유도팀을 이끌고 있는 안병근 감독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중반에 들어선 오늘까지 최민호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판 승의 사나이'는 금메달을 따는 순간부터 애국가 연주가 끝난 뒤까지 울고 있었다. 클로즈업 된 얼굴을 보면서 그 역시 땀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음을 알 수 있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금과 동(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고 했다. 시상대에서 흔들었던 그의 손도 기억한다. 짧고 뭉툭한, 자갈밭을 개간하느라 닳아 문드러진 쇠스랑갈퀴를 연상케 했다.

땀만큼 많은 눈물, 우리도 슬프다

또 하나의 설움을 생각한다. 금메달을 놓친 왕기춘의 눈물이다. 최민호가 상대를 메친 것처럼 그는 당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계속 울었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금메달을 못 따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24년 전 안병근 선수 누님의 그것, 2008년 최민호와 왕기춘의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눈물이다.

최민호의 눈물을 돋보이게(?) 한 것은 올해 유럽 유도선수권 챔피언인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였다. 은메달에 그쳤던 그가 자신을 메쳤던 최민호를 축하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체급이 달라서 그렇지, 우리의 왕기춘과 같은 처지였다. 왕기춘은 은메달에 그친 죄의식으로 통곡했고, 파이셔는 눈물젖은 최민호를 환한 미소로 위로했다.

유도에 관심이 높아 안병근 감독과 최민호 왕기춘 파이셔의 얘기를 나열했지만 다른 종목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금메달과 은메달, 은메달과 동메달, 동메달과 그 이하를 이다지도 천국과 지옥처럼 매몰차게 갈라놓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1976년 양정모(레슬링) 이후 1984년 LA올림픽부터 복수(複數)의 금메달을 따내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우리의 메달리스트들은 골프의 '박세리 키즈'와 같은, 'LAㆍ88올림픽 키즈'다. 최민호 왕기춘 역시 '안병근 키즈'의 대표들이다. 스포츠 '톱10' 반열에 오른 이제는 금메달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LAㆍ88올림픽' 때부터 만들어진 정부의 메달리스트 포상금 기준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올림픽 순위별 기준은 90(금), 30(은), 20(동), 8(4위), 4(5위), 2(6위)로 돼 있다. 그나마 올림픽 정신을 감안한 것이라 한다. 다른 세계대회의 경우 대개 8(1위), 2(2위), 1(3위)의 비율이고, 4위 이하는 0이다.

금메달 수로 국력을 가늠하려 드니 은메달을 따도 '역적'이 되고, 포상금 기준이 이러하니 금메달을 놓치면 가족에게 '죄의식'을 갖는다. 정부 포상금이야 그래도 종목을 따지지 않지만 기업의 후원금이나 격려금은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죽을 힘을 다했던 선수들에게 웃음 대신 울음을 강요하는 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이젠 金ㆍ銀ㆍ銅에 집착 않게 하자

우리는 우리가 '우생순'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힘들고 보답이 적지만 거기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올림픽이 아니면 영화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일이다. 우리의 수영 영웅 박태환이 금메달에 이어 은메달을 딴 후 아직도 'LA나 88'에 젖어있는 구세대(?) 국민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애국가 연주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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