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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2008/ 지구를 든 '女헤라클레스'…장미란 그녀는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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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2008/ 지구를 든 '女헤라클레스'…장미란 그녀는 예뻤다

입력
2008.08.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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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요(加油)” 함성이 “대~한민국”보다 컸다. 그러나 등장한 건 중국선수가 아닌 한국의 장미란(25). 중국 관중은 세계신기록에 도전하는 장미란에게 열띤 응원을 보냈다.

“으아아!” 기합소리와 함께 186㎏짜리 역기가 어깨 위에 얹혔다. 무게를 버티기 힘든 듯 얼굴이 빨개졌다. 장미란은 잠시 심호흡한 뒤 바벨을 번쩍 들었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신기록.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한 장미란은 환호하는 한국 응원단에 답례한 뒤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장미란이 아테네의 한(恨)을 풀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은메달에 그쳤던 장미란이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냈다. 장미란은 16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역도 75㎏이상급에서 인상 140㎏, 용상 186㎏을 들어 합계 32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미란과 함께 우승후보였던 무솽솽(중국)이 출전하지 않아 금메달은 사실상 예약된 것이었다. 역도는 총 6체급 가운데 국가당 4체급만 출전할 수 있다. 장미란은 은메달을 차지한 우크라이나의 올하 코로브카(277㎏)보다 무려 49㎏이나 더 들었다. 따라서 금메달이 일찌감치 정해진 가운데 관심은 온통 세계기록 경신 여부에 쏠렸다.

장미란은 인상에서 무솽솽이 갖고 있던 세계기록(139㎏)보다 1㎏ 많은 140㎏을 들어올렸다. 용상 1차 시기에서 175㎏을 들어 금메달을 예약한 장미란. 그는 탕공홍이 아테네올림픽에서 세운 용상 세계기록(182㎏)를 두 차례나 경신하면서 합계까지 포함해 세계신기록을 무려 5개나 작성했다.

장미란은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기쁘다”면서 “역도 최강국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서 세계신기록까지 세워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미란은 “종합대회 콤플렉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그런 소리 안 듣게 돼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금메달이 확정됐는데 세계기록에 도전한 이유를 묻자 오승우 여자 대표팀 감독은 “한국 사람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응원해준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베이징=이상준기자 jun@hk.co.kr

■ 스포츠과학의 힘!

스포츠과학이 뿌린 씨가 금메달이란 결실을 맺었다.

역도는 누가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가로 승부를 가린다. 힘이 세면 역도를 잘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빠르고 정확한 기술,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이 더 중요하다. 체육과학연구원 문영진(41) 박사는 3차원 영상 분석과 근전도 분석(EMG:elec-tromyography)을 통해 장미란의 금메달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체과연은 장미란이 금메달을 따려면 첫째 부상이 없어야 하고, 둘째 인상 기록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릎부터 고관절, 어깨를 거쳐 팔꿈치까지. 장미란은 2004아테네올림픽 이후 각종 통증에 시달려왔다. 또 용상은 강하지만 인상은 약해 세계 정상에 오르기엔 2% 부족했다.

교통사고로 왼 무릎을 다친 경험이 있는 장미란은 바벨을 들 때 항상 왼쪽으로 기울었다. 문영진 박사는 "근력과 근육량을 조사해보니 오른쪽보다 왼쪽이 훨씬 약했다"면서 "그래서 2005년부터 왼 무릎 신근과 고관절, 신전근을 단련시켰다"고 말했다. 좌우 근력이 균형을 맞추자 부상은 조금씩 사라졌고, 기록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장미란은 자신의 약점이었던 인상에서까지 세계신기록(140㎏)을 세웠다. 문 박사는 2004아테네올림픽과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탕공홍, 무솽솽(이상 중국) 등의 장점을 분석해 장미란에게 제공했다. 스포츠과학은 무솽솽의 장기인 이중무릎넣기로 장미란을 무장시켰다.

오승우 여자 대표팀 감독은 문 박사의 분석과 지적을 수용했다. 장미란은 바벨을 들기 전 허리를 S자로 만들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하체의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훈련하는 장미란은 스포츠과학이 제시한 금메달로 가는 길을 착실하게 걸었다.

체육계에는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의 말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오 감독은 문 박사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댄 결과 장미란을 세계 최고의 역사로 키웠다. 장미란의 금메달 뒤에는 스포츠과학이 있었다.

■ "김동희 코치님 하늘서 보셨죠"

"하늘에서 미란이가 금메달을 따는 걸 봤겠죠?"

장미란이 금메달을 따내자 환호성을 지르던 오승우 감독은 갑자기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장미란과 윤진희에게 언니이자 엄마와 같았던 고(故) 김동희 코치가 생각나서다.

여자역도 대모로 불렸던 김 코치는 지난 4월1일 간암으로 36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역도와 결혼했다'며 태릉선수촌에서 살았던 김 코치는 원자력병원에서 암과 사투를 벌였다. 장미란과 윤진희가 병문안을 가면 그는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는 병문안을 오지 말라"고 다그쳤다.

오승우 감독은 가방 속에서 한지를 꺼냈다. 김 코치 유골을 쌌던 종이였다. 오 감독은 "애지중지하던 미란이와 진희가 메달을 따는 걸 보라고 김 코치 대신 베이징에 데려왔습니다"라면서 "병원에서 3개월 이상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아마 애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방해된다고 서둘러 하늘로 떠난 것 같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김 코치는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깜짝 은메달을 따낸 장미란을 지도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윤진희에게는 엄마 역할까지 했다. 암과 사투를 벌이던 그는 죽기 전 장미란과 윤진희의 장단점과 성격에 따라 어떻게 준비하고 경기를 해야 하는지 빼곡이 적은 문서를 남겼다.

오 감독은 베이징에서도 항상 김 코치의 몸을 대신한 한지와 마음을 담은 문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오 감독은 취재진 몰래 눈물을 훔치며 "미란이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동희가 가장 기뻐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동희 코치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까. 장미란이 금메달을 따고 잠이 든 17일 새벽 베이징에는 이슬비가 내렸다.

베이징=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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