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홀루프 지음ㆍ류소연 옮김/창비 발행ㆍ231쪽ㆍ8,500원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서부)와 모라비아(동부)로 나뉜다. 2차대전 이전 보헤미아의 독일 접경 지역엔 체코인과 독일인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체코(당시엔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맹국이던 영국ㆍ프랑스의 묵인 아래 나치 독일이 1938년 체코 일부 지역, 이듬해엔 영토 전체를 합병하면서 체코인들은 수난의 세월을 겪는다. 독일 패전 후엔 상황이 바뀌어 접경지 독일인들이 고향에서 추방된다.
이런 역사적 상처를 간직한 체코 내 독일 접경지는 작가 요제프 홀루프(82)의 고향이자 그가 1992년 발표한 이 자전적 소설의 무대다. 작품의 축을 이루는 것은 나치의 체코 합병 직전 독일 소년 요제프와 체코 소년 이르시가 나누는 우정이다. 2차대전을 다룬 소설에서 으레 등장하는 독일인-유대인의 교유라는 정형에서 벗어난 독특한 설정이다. 악연을 딛고 사귀게 된 둘은 마을 외딴 곳 '집시들의 숲'을 둘만의 천국으로 삼는다. 말조차 필요 없는 교감을 나누며 발가벗은 채 뛰노는 두 소년의 어울림은 순수 그 자체다.
하지만 세월은 수상하다. 마을 사람들은 독일인과 체코인으로, 조찌(사회민주주의자)와 헨라인(나치 동조자)으로 나뉘어 반목을 거듭한다. 히틀러의 입성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독일인ㆍ헨라인으로 대세가 기울어간다. 조찌였던 요제프의 아버지도 고심 끝에 헨라인으로 전향한다. 이런 와중에도 우정을 이어가는 두 소년은 또래의 공격 대상이 되고, 그들의 천국은 어른들이 은밀한 음모를 꾸미는 장소가 된다. 결국 이르시 가족은 위험을 피하려 마을을 떠난다. 홀로 남은 요제프는 둘만의 추억을 지키기 위한 모험을 결심한다.
평화로운 마을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망가져가는 과정이 소년들의 우정과 얽혀 한층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소설이 마냥 심각하고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화자인 요제프가 남다른 눈썰미와 어린애다운 순진함으로 이런 파국을 의뭉스럽고 위트 있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어린날 기억에 기댄 보헤미아 접경 지역에 대한 세밀한 풍속 묘사가 독자에게 이국적 풍취를 전한다. 작가가 완성한 지 50여년 만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페터 헤르틀링 상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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