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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순(耳順)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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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순(耳順)의 나라

입력
2008.08.1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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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建國)의 원년이 언제인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1948.8.15를 기준일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대세이기는 하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4.13을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1919년을 건국 원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 등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법원에 위 사업의 진행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해둔 상태이다.

좀 생뚱맞은 건국원년 논쟁

그러나, 지금의 건국원년 논쟁은 좀 생뚱맞다. 우리나라의 건국 원년을 1948년, 또는 1919년으로 제한한다면 찬란했던 반만년 역사는 다른 나라의 역사인가? 1948년, 또는 1919년 이전에는 이 땅에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가 존재했던가? 말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국호(國號)와 국체(國體), 정체(政體)는 바뀔 수 있지만, 그것들이 바뀐다 하여 그 나라의 역사가 단절되고 별개의 나라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국의 개념을 그렇게 축소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지금의 '건국'원년 논쟁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1948.8.15를 기준일로 보는 견해를 따르더라도'건국 60주년'이라는 표현은'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으로 바뀌는 것이 옳다.

어쨌거나 1948.8.15를 기준일로 본다면,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람으로 치면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른 것이다. 이순이라는 말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술회한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에서 따온 말로서, 그대로 직역하면 '귀가 순해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순'의 참뜻에 대하여 학자들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용하는 경지'라고 부연 해석하기도 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07년 한 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이순은 단순한 경청이 아니다. 물론 경청도 중요하다. 어쩌면 이순은 분별력이라는 말로 가장 잘 정의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의 좋고 나쁜 측면을 모두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견해 차이가 아무리 첨예해도 서로 효과적인 협조관계를 일궈내는 능력을 뜻한다. 나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공자께서 나이 40세에 불혹(不惑),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이순(耳順)은 60세가 되어서야 이르게 되었다고 하신 데 대하여, '불혹, 지천명의 경지보다 이순의 경지가 더 높은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되고, 천명까지 알게 되는 경지를 지나서야 비로소 이순의 경지를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순의 경지를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불혹이나 지천명은 개개인의 결단, 또는 인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이순은 타인과의 상생, 조화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훨씬 높은 경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대한민국, 이제 '잘 듣는 나라'로

공자께서도 60세가 되어서야 이룬 이순의 경지를 범인(凡人)들이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정부 수립 60주년이 된 대한민국은 이순의 경지에 이른 나라, 그러기 위하여 듣기를 잘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역할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라고 한다.

한자로 들을 청(廳)자는 '귀(耳)를 주인(王)으로 해서 진지한 눈(十目)으로 바라보며 한마음으로(一心) 듣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는 말도 있듯이 잘 듣기는 모두에게 유익하다. 대한민국이 듣기를 잘하는 이순의 나라가 되어 모든 소모적 논쟁이 그쳐지기를 바라는 아침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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