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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스포츠와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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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스포츠와 긴장

입력
2008.08.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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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는데도 남자 양궁 박경모 선수의 은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11번 째 화살 통한의 8점. 10점을 예사로 쏘는 그로서는 좀처럼 하지 않던 실수였다. 그만큼 긴장과 심리적 부담이 컸다는 얘기다. 승부나 발표 등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순간에 지나친 긴장으로 발생하는 수행불안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엔 방망이질 하듯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하고 호흡도 가빠진다. 근육은 굳어지고 집중력은 저하돼 평소 갈고 닦은 기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를 낸다. 양궁, 사격 같은 종목이 특히 그렇다.

▦120점 만점에 119점 세계기록을 보유한 여자양궁 세계랭킹 1위 윤옥희는 4강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6점 차로 졌다. 극도의 긴장에다 매너 빵점인 중국 관중의 소음 응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탓. 스포츠의 승부는 상대방과의 대결이라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임이 베이징 올림픽 여러 경기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선수들에겐 신체적 기량 못지않게 긴장과 불안을 이기는 훈련이 중요하다. 우리 양궁 선수들은 명상 등을 통한 마음수련 외에 특수 담력훈련까지 했고 중국의 소음 공세를 염두에 둔 훈련도 했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대결의 순간 선수들의 핏속엔 긴장 호르몬 아드레날린이 분출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싸우거나 도망치기 위해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유전자에 각인시킨 본능이다. 아드레날린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우리 몸을 최고수준의 전투태세로 돌입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혈당을 늘리고 심장박동을 빠르게 해 에너지를 듬뿍 실은 대량의 혈액을 근육에 보낸다. 가쁜 호흡은 대량 소모되는 산소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분비는 지나친 긴장을 유발해 오히려 전투능력의 심각한 저하를 초래한다. 아드레날린의 역설이다.

▦선수들의 자기자신과의 싸움은 바로 아드레날린의 역설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아드레날린의 힘을 극대화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내 승리하는 선수나 전사를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에게도 선수들과 똑같이 아드레날린이 분출한다. 아드레날린의 공명 현상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불안 끝에 얻는 짜릿한 승리감을 통해 현대인들은 신석기시대 이래 사냥과 전쟁의 본능을 해소한다. 필연적으로 적과 나를 구분하니 대결적 민족주의 분출이나 편가르기로도 이어진다. 진화의 새로운 단계에 이르지 못한 현대인이 아드레날린의 향연을 즐기는 데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할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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