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에서 북서쪽으로 200㎞ 남짓 떨어진 나가노(長野)현은 일본의 대표적인 산악 지역이다. 기타(北)알프스 등 산맥이 줄이어 있고 1998년 동계 올림픽으로 유명한 이 곳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중요한 시설이 남아 있다. 마쓰시로(松代) 대본영이다.
조선인 징용자로 만든 전시 수도
전쟁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일본 군부는 도쿄가 바다에 면해 있는데다 관동평야의 끝에 위치해 본토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질 경우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해 11월부터 나가노시 남쪽 지쿠마가와(千曲川)를 끼고 있는 마쓰시로마치(松代町) 일대 12곳에 엄청난 규모의 갱도를 파기 시작했다. 주요 정부 시설과 천황이 사는 황거(皇居)를 이곳 산악 갱도로 옮겨와 전시 수도로 삼을 작정이었다.
착공 당시 동원된 일꾼 1만 명 중 징용된 조선인이 7,000명이었다. 공사가 본격으로 시작된 이듬해 4월부터는 조선인 1만명, 일본인 1만명으로 늘었다. 변변한 착굴 설비 없이 맨손으로 땅 파듯 다이너마이트와 삽으로 진행된 공사는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중단됐다.
최고사령부인 대본영과 황거가 들어설 마이즈루야마(舞鶴山) 갱도는 2.6㎞, 정부 시설과 NHK가 옮겨올 가장 규모가 컸던 조잔(象山) 갱도는 5.9㎞에 이른다. 75%의 공정으로 그친 벌집형 갱도의 전체 길이는 11㎞나 된다.
하지만 이 시설은 전쟁이 끝난 뒤 40년이 넘도록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당연히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고 존재 자체가 잊혀져 가고 있었다. 나가노시가 갱도 일부를 공개한 것은 1989년부터다.
지역의 한 고교가 수학여행 갔던 오키나와(沖繩)에서 전쟁을 기록하고 알리는 활동을 본 뒤 이 갱도를 영구보존하고 평화기념관을 짓도록 시에 요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본영을 보존하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됐고 시도 공감해 갱도에 안전 설비를 갖추고 일부를 공개하게 됐다.
마쓰시로 대본영 유적 관리와 안내는 지금도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70대에 접어든 다카하시 쇼이치(高橋正一)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종전기념일인 15일 대본영 갱도에서 만난 다카하시씨는 시설의 착굴 경위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설명하면서 "징용된 조선인 어린이들이 이 곳에서 숱하게 죽어 갔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1,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인 사망자 유골은 아직 단 한 점도 발굴되지 않았다"며 "도쿄, 오사카 등의 건축자재로 실려나갔던 당시 채굴 석재에 섞였거나 아직 갱도 바닥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한 한일연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이 전쟁 책임국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는 일본인은 점점 줄고 있는 듯 하다. 자신들이 겪은 피해를 통해서만 전쟁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숱한 일본 언론이 종전기념일에 앞서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 원폭 피해를 특집으로 다루지만 거기에는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일색이다. 도쿄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도쿄 에도(江戶)박물관의 전쟁시기 전시는 미군의 공습으로 일본이 얼마나 큰 피해를 봤는지가 전부다.
그래서 규모는 작지만 '대본영을 보존하는 모임' 같은 일본 지역 시민단체의 활동이 값지다. 정부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일 신시대'의 길을 모색해주기를 기대해본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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