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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개인택시 기사 이병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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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老年] 개인택시 기사 이병엽씨

입력
2008.08.1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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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만 잡으면 아직도 청춘입니다. 택시 운전, 앞으로 10년은 거뜬합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만난 이병엽(78)씨. '그 연세에 어떻게 운전을 하시냐'고 묻자,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올해로 운전경력 54년, 택시 운전만 30년이 넘는 베테랑 기사다. 1968년부터 88년까지 20년간 중소기업에서 회사 트럭과 임원 차량을 운전했던 것을 빼고는 택시만 몰았다. 중소기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회사 택시를, 88년 이후에는 개인 택시를 모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는 운전을 군 복무시절인 54년 배웠다. 55년 전역 후 시발택시를 몰았다. 이씨는 "59년 정식 면허를 따기 전까지 4년은 군대 면허로 차를 몰았다"며 "지금은 불법이지만, 그때는 그랬다"고 말했다.

침대보다는 운전석에 앉아 있던 시간이 많아서 일까. 이씨는 인생 행적을 차량 모델로 기억해낸다. 53세인 둘째와 51세인 셋째는 각각 시발택시와 새나라택시를 몰 때 낳았고, 88서울올림픽은 스텔라로 영업할 때 열렸다는 식이다. 현재 그의 애마인 5년된 NF쏘나타는 7번째 차이다.

이씨의 택시에는 젊은이가 운전하는 일반 택시와 3가지 점에서 다르다. 과속ㆍ신호 위반이 없고, 승차 거부를 하지 않으며 네비게이션이 없다.

과속과 신호 위반을 하지 않는 것은 50년 넘게 큰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성격이 느긋한 까닭도 있지만,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준법정신 때문이다. 승차 거부도 절대 하지 않는다. "손님과 싸우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몇 천원 더 버는 것보다는 여유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서울 뒷골목을 누비고 다닌 만큼 네비게이션도 필요치 않다. 라디오 교통정보와 50여년 경험을 토대로 목적지까지 최적 경로를 생각해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네비게이션 없냐'고 불안하게 묻던 승객들도 이씨가 요리조리 골목길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55년 관록이 네비게이션보다 낫다'고 놀라워한다.

8년전 고희를 넘긴 이씨가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침마다 운동을 거르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6시면 서울 가회동 집을 나와 인근 삼청공원에서 1시간씩 건강을 챙긴다. 그 덕분에 힘찬 걸음걸이, 쩌렁쩌렁 목소리는 50대 못지않다. 그는 "식사시간 빼고 하루 11시간 이상 운전하려면 체력은 필수"라며 "밥은 걸러도 운동은 매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택시 기사로 살아온 인생이 자랑스럽다. "손님을 가장 빠르게 원하는 목적지까지 모셔다 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냐"며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2남2녀를 키운 것도 운전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생각을 물려받아 첫째 아들 성만(55)씨도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취재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우리가 모실 테니 운전은 그만 하시라'던 자식들도 아버지의 자부심에 만류를 포기했다. 다만 승객 안전과 자식들의 염려를 고려, 5년전부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차를 몬다. 운행 시간을 단축하면서 월 수입이 220만원에서 50만원 가량 줄어들고, 올들어서는 유가 폭등으로 또다시 20만원이 추가로 감소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이씨는 "아침에 나갈 직장이 있는 게 어디냐"며 "아내(72)와 둘이 사는 데 모자라지 않을 만큼 버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한 택시 운전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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