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 인생] 바리데기와 '님은 먼곳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 인생] 바리데기와 '님은 먼곳에'

입력
2008.08.18 00:17
0 0

어느 순간 나이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이 아주아주 오래된 것 같은 느낌, 혹은 갓 피어난 빛처럼 지금 막 시작하는 느낌! 그 느낌을 따라가 보면 물리적으로 흐르는 것이라 믿어온 시간의 밖 겁외(劫外)입니다. 거기서는 모두가 한 생명이고, 모두가 사랑입니다. 우리 샤먼들이 대대로 불러온 서사무가(敍事巫歌)의 주인공 바리데기를 아십니까? 버려져서 바리데기입니다. 그녀는 그 시간 밖 겁외에서 사랑의 생명수를 길어 올린 여인입니다.

바리를 버린 것은 아버지 오구대왕이었습니다. 아들을 기원했으나 또 딸! 배반당한 기원은 종종 분노가 되지요? 왕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뜨겁고 독한 분노를 다룰 줄 몰랐던 왕은 미련없이 아이를 내칩니다. 분노로 인해 가장 소중한 존재를 버린 겁니다. 언제나 삶을 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가까운 사람이지요? 부모거나 자식, 부부거나 연인! 그러나 보물도 그 삶의 진창에서 발견되는 걸 보면 상처가 보물의 재료인 모양입니다.

사실 우리는 분노하는 오구대왕이면서 버림받은 바리입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엔 버림받은 무엇인가가 응어리 되어 뭉쳐 있습니다. 그 응어리를 풀어줄 생명수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응석부리지 않고 진정하게.

그 바리가 생각난 것은 이준익의 영화 <님은 먼 곳에> 를 보면서였습니다. 님을 찾아 헤매는 순이는 근대판 바리데기네요. 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이, 님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도 없이 삶이 인도하는 대로 꿋꿋하게 님을 찾아간 여인 순이의 라스트 신을 두고 말이 많지요? 나는 그 라스트 신이 생명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님의 거짓 절망, 거짓 분노, 거짓 두려움을 일깨우는. 그 라스트 신은 시간 밖 겁외에 도달한 여인의 행동입니다.

거기 겁외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간을 살고 있는 거지요?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삶은 소유고 업이지만, 바리와 순이를 따라가다 보면 삶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되풀이되는 업(業)이 아니라 그 업을 뚫고 나오는 각성입니다. 진정한 삶은 몸을 던져 도달하게 될 사랑입니다.

이주향ㆍ수원대 교수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