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글ㆍ서지함 그림/리젬 발행ㆍ144쪽ㆍ9,000원
해방의 감격은 한 바탕 꿈이었을까. 1948년 8월 15일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맞이한 주인공 순이는 식민지의 비극적 역사를 온몸으로 상징하는 열한 살 소녀다. 순이의 어머니는 "공부도 공짜로 시켜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전선으로 끌려간 종군위안부, 아버지는 인근 부대로 끌려온 징용노동자다.
악몽 같은 세월을 보낸 이들에게 해방은 꿈과 같았다. 조선으로 향하는 유일한 귀환선이라는 우키시마호에 올라탄 순이는 콩나물 시루 같은 배 안에서 짐짝처럼 실려가는 처지가 괴롭기는 하지만, 말로만 들었던 모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배 안에서 만난 수많은 조선인들이 겪었던 집단적 고통의 경험을 공유하면서부터 순이는 더욱 해방이 실감이 난다. 이들은 광산, 탄광, 벌목장, 주물공장, 하역장에서 꿀꿀이죽을 먹으며 연명했고, 바닷물이 차오는 갱도 안으로 강제로 떠밀려 들어가 석탄을 캐야 했다.
그저 "등하교 때 걸어 넘었던 물레재를 넘어가보고 싶다" "장모님을 도와 고추도 따고 감자도 캐고 싶다" "전차 타고 경성시내 구경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바람은 그러나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난다. 일본인 승무원을 태운 구명보트가 뭍으로 떠나자마자 배는 폭발음과 함께 두 동강이 나고,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을 찾아 물 위를 떠나니던 순이는 물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배가 침몰한 지 6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의도적인 폭침인지 우발적 사고인지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1948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의 수장사건을 사실감 있게 담았다. 생존자들의 피해보상과 진상규명 요구는 2003년 일본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어떤 종류의 식민지배이건 그것은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수채화풍의 삽화에 함께 실려 전달된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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