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MB노믹스’의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과감한 궤도 수정을 예고한다. ‘7ㆍ4ㆍ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로 대표되는 성장 지상주의를 대신해 이번에 제시한 키워드는 ‘그린(Green)’이다. 단기 고도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탈피해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성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리겠다는 것이다.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수반된다. 단기 성장과의 충돌도 적지 않을 수 있다. 지도자의 인내가 필수적이다. 자칫 ‘7ㆍ4ㆍ7’보다 더 뜬 구름 잡는 비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 녹색 성장인가
성장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고됐다. 출범 초기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을 밑돌았고, 촛불 정국 등에 막혀 정면 돌파할 추진력까지 상실했다. 환란 때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서민들에게 ‘7ㆍ4ㆍ7’은 더 이상 무의미했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녹색 성장’ 카드를 꺼냈을까. 사실 ‘7ㆍ4ㆍ7’은 1970년대 개발경제 시대의 고도성장을 연상케 한다. 당시의 놀라운 성장엔 보이지 않는 희생이 뒤따랐다. 대기업들이 이뤄낸 한강의 기적 뒤엔 수많은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MB노믹스’가 ‘대기업 프렌들리’ ‘부자 프렌들리’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 면에서 ‘녹색 성장’은 ‘7ㆍ4ㆍ7’과 대척점에 있다. 약육강식 대신 공존의 이미지, 구시대적 불도저 대신 미래 지향적 이미지가 강하다. 지지 세력에서 이탈한 젊은 층, 그리고 상대적 진보 계층을 함께 아우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7ㆍ4ㆍ7’을 포기했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어찌 보면 ‘녹색 성장’이야말로 “임기 내에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 체질을 갖추겠다”는 목표에 부합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실현 가능한가
하지만 ‘녹색 성장’은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환경 규제 등 각종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환경 기술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 임기 이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플랜이 없다면, 또 지도자의 확고한 철학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 같은 지독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현재보다 미래를 택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선 “패러다임의 변화라기 보다는 단순한 국면 돌파용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손사래를 친다. “녹색 성장은 갑자기 나온 내용이 아니라 지난달 G8 회의 등에서 밝힌 적이 있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에 일자리 창출에 녹색 성장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실천 의지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미래연구실장은 “그동안 현 정부가 강조해 온 성장에 환경을 접목시킨 ‘녹색 성장’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발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에 대한 준비와 각오를 얼마나 하고 있는 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 녹색성장/ 태양광·풍력 '그린홈' 2020년 100만가구로
이명박 대통령이 기존 '747 성장'을 대신할 성장 패러다임으로 '그린성장'을 제시했다. 대기업의 투자확대-경기 활성화-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기업 프랜드리'성장전략을 사실상 포기하고 미래에 무게중심을 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그린 프랜드리'성장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린성장'의 실천방안으로 친환경 주택 건립과 초고효율 자동차 개발을 제시했다. 각각 '그린홈(green home) 1백만가구'와 '세계 4대 그린카(green car) 강국'이란 구체적인 목표를 내걸어 그 의지까지 분명히 했다. 앞으로 정부 정책의 기본방향 역시 산업과 금융 등 여러 측면에서 이 같은 목표에 집중할 것으로 보여 국내 산업구조의 개편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날 제시된 그린홈은 주택에 태양광ㆍ풍력발전기 등을 통해 에너지를 자급하는 주택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체 1,200만 가구 중 10%에 해당하는 100만 가구를 그린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04년부터 추진중인 태양광 보급 사업을 확대, 개편하는 한편 주택?지역의 특성에 따라 태양광 뿐 아니라 태양열과 지열, 연료전지 등 4개 분야로 확대 추진한다.
이 중 해안ㆍ도서지역 등에는 가정용(3kW 이하) 소형풍력을 보급한다. 태양열과 지열은 일반가정의 온수 급탕이나 난방보조용 설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해 2020년까지 29만2,000호로 늘리고, 수소 연료전지는 가정용 중심으로 2009년에 시범 보급한 뒤 점차 늘려 2020년에 4,000호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3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10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서울시가 마곡지구를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저소비형' 도시로 조성키로 하면서 밝힌 수소 연료전지 발전시설 설치, 지열ㆍ하수열 집열시설 설치, 가로등과 실내조명 등 일체의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로 대체하는 등의 계획이 벤치 마킹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성장 원동력의 또 다른 축인 그린카는 기존 내연기관에 비해 효율이 높고 배출가스가 적거나 없는 자동차들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비롯,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PHEV), 클린 디젤자동차, 연료전지자동차, 전기자동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자동차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상용화 됐으며 2000년 세계적으로 2만여대가 판매된 데 이어 2005년 32만대 규모로 급성장했다. 국내 자동차 제작사들도 시험제작ㆍ운행 중으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특히 14일 국토해양부가 전기자동차 시범운행방안을 마련키로 해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초석을 다진 데 이어 이날 그린성장의 핵심 축으로 그린카가 지정됨에 따라 자동차 업계의 그린카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그린 프랜드리'정책은 그러나 단기간에 효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기존 정책방향과도 크게 다르다. 좀더 구체적이고 실천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후속 대책이 폭넓고 설득력있게 보완돼야 한다는 경제계의 지적이다.
■ 국가브랜드/ 동일 제품이 독일산은 1.5배가격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가브랜드를 언급한 배경에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발목잡고 있는 저조한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브랜드 조사기관인 안홀트 지엠아이(Anholt-GMI)가 2006년 발표한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조사대상 35개국 중 25위로 러시아 헝가리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도 뒤졌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3,510억달러)는 실제 GDP(국내총생산)의 37% 수준으로 미국의 56분의1, 일본의 27분의1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국내총생산 기준)가 떨어지는 네덜란드만 해도 국가브랜드 가치가 9,300억 달러로 우리의 3배 가까이 된다.
이미지 저평가는 낮은 제품가격으로 이어져 코트라와 산업정책연구원의 '2007 국가브랜드 맵' 조사에서 동일한 품질이라도 한국산은 100, 미국ㆍ일본산은 149, 독일산은 155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류바람에 우리의 국가이미지가 다소 높아지는 추세에 있으나 아직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낮은 국가이미지 때문에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고도 제값을 못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코리아브랜드의 낮은 이미지에는 국제 원조무대에서의'짠 손'이미지도 크게 자리한다. 개도국에 대한 유ㆍ무상 지원을 뜻하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국민총소득(GNI)의 0.06%(2006년 잠정치)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46%)의 8분의1 수준이다. 이 마저도 물품 구매나 수주 담보 등을 조건으로 하는 대가성 원조가 전체의 97.4%(2005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늦었지만 '코리아 브랜드의 제자리 찾기'작업은 '미래'를 새로운 키워드로 내세운 정부에게는 필수적인 과제의 하나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할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이름 뿐이었던 기존 여러 위원회와는 달라야 한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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