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8ㆍ15 경축사'를 통해 역대 어느 대통령과도 뚜렷이 구별되게 국민의 자긍심을 북돋우는 역사관을 피력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된 후 63년, 특히 정부 수립 후 60년의 역사를 '성공과 발전, 기적의 역사'로 평가하면서 "건국 60년의 기적의 역사는 새로운 60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심 가치로 안전과 신뢰, 법치를 내세웠다.
반면 광복 63주년의 의미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고, 그 지향점도 과거와 달랐다. 이 대통령은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언뜻 "어떻게 해야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인지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축사와 비슷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친일과 독재 잔재 등 과거사 청산에 역점을 둔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은 '부강한 나라'라는 실용적 목표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이렇듯 단호하게 자신의 역사 인식과 국정 비전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취임 100일이 '쇠고기 파동'으로 얼룩지면서 신뢰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대통령이 정치적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광복 이후 현대사의 객관적 성과까지 부인하려고 애쓰는 '자학 사관'에 맞서 보수진영의 '자존 사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현대사 인식을 둘러싼 논쟁이 북한과의 이념ㆍ체제 대결과 얽힐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미 북한과의 대결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마당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긍지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역사의 굴곡과 그늘을 겸허하게 성찰하지 않고는 미래의 건전한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경제 성장과 발전, 자유와 인권의 신장 등의 성과에 이르는 과정에 얼룩진 탄압과 질곡의 자취를 외면하거나 가리는 것은 '자학 사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역사 왜곡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의 경축사는 그런 의혹과 비판의 소지를 말끔히 지우지 못했다. 사회적 논란 과정에서 부정적 시각이 우세했는데도 왜 굳이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바꾸어야 하며, 어째서 대한민국 헌법 제정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 '건국'의 출발점인지 불분명하다.
공세적 국정 운영을 예고하는 '법치'의 강조도 적잖이 우려를 갖게 한다. 법에 의한 지배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란 헌법 이념과 일치하는 법치주의의 실질적 의미를 놓친 일방적 '법치'는 소통 부재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 대통령이 역사와 국민 앞에 더욱 겸허한 자세로 국정을 이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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