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비슷한 행보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3ㆍ미국)와 ‘황태자’ 박태환(19ㆍ단국대). 이미 세계 수영계의 전설이 되어버린 펠프스가 걸어온 길을 한국의 수영 영웅 박태환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열 다섯의 실패, 자양분이 되다
1985년 6월30일 미국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펠프스는 15년 후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다. 15세 수영 천재에게 거는 미국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펠프스는 접영 200m에서 5위에 그치며 다음 올림픽을 기약해야 했다.
1989년 9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난 박태환. 그는 15세 때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이미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결선 진출이 유력시됐던 중학교 3학년생에게 쏠린 수영계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15세 소년 박태환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준비 신호를 출발 신호로 잘못 듣고 부정 출발을 두 차례나 저질렀다. 어이 없는 실격. 박태환은 “4년 전 실수가 큰 경험이 됐다”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거칠 것 없는 열아홉, 세계 수영계의 중심에 서다
펠프스는 시드니올림픽 이후 거침없는 질주를 했다. 2001년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접영 200m 우승을 차지한 펠프스는 2년 뒤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에서는 4관왕에 오르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펠프스는 열 아홉이 되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무려 6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수영 황제’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르렀다.
박태환의 고교 시절은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 고교 2학년 때인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그는 1년 후 멜버른 세계선수권에서 자유형 400m를 제패하면서 이윽고 세계 메이저대회 패권을 차지했다. 같은 해 일본 지바 프레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트 해켓(28)을 연달아 격파한 박태환은 어느덧 400m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열아홉이 된 2008년.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의 히어로로 떠오르며 세계 수영사를 바꿔놓는 주인공이 됐다.
시련을 이겨낸 영웅들
성실성과 겸손함으로 대변되는 ‘바른 청년’ 펠프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아테네올림픽을 코 앞에 둔 2004년 초, 펠프스는 고향인 볼티모어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체포 이유는 음주 운전. 펠프스는 음주 상태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통과한 뒤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펠프스는 술에 만취해 있었고, 운전면허는 정지된 상태였다. 미국 언론은 ‘어린 영웅의 오만’이라며 올림픽을 앞둔 그를 맹공했다. 펠프스는 이후 말없이 자숙했다. 오직 올림픽을 대비한 연습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같은 해 올림픽에서 6개의 금메달을 조국에 선사했다.
박태환 역시 올림픽을 6개월 여 앞둔 올 초 위기를 겪었다. 전담팀이 재계약 문제로 스폰서와 갈등을 빚은 끝에 해체되고 만 것. 박태환은 흔들렸다. 나홀로 전지훈련에 나섰지만 훈련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었고, 국민적인 영웅을 원하는 갖가지 행사에 불려 다녔다. 연예인과의 스캔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고, 불성실한 사생활을 지적하는 증언들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박태환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짐을 쌌다. 자신을 키워준 노민상 감독과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연습에 집중했다. 태릉으로의 복귀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향한 터닝포인트나 다름없었다.
베이징=허재원 기자 hooah@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