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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조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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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조 히데키

입력
2008.08.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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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인 1998년 이맘때 일본에서는 영화 <프라이드_운명의 순간> 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으로 극동군사재판을 거쳐 처형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미화한 내용이었다. 영화의 인기는 기획ㆍ제작 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관여한 우파 세력의 조직적 지원과 동원 덕분이었지만 일본 국내의 논란과 중국과 북한의 거센 반발이 결과적으로 일본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주연인 쓰가와 마사히코(津川雅彦)의 노련한 연기와 흐트러짐 없는 영상이 흥행 성공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프라이드> 는 전후 50여 년이 흐르면서 일본의 '역사 반성'이 풍화하는 틈을 비집어 들던 '역사 정당화' 흐름을 상징했다. 어떤 주인공이든 쉽사리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의 특성 상 이 영화에서도 도조는 영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극동군사재판에서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친 도조의 입을 통해 태평양전쟁이 자존(自存)ㆍ자위(自衛)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는 일본 우파 세력의 역사인식을 조금도 거르지 않고 관객에게 전했다. 그 직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용 역사교과서가 한일, 중일 간의 외교 불씨로 등장한 게 우연하지 않다.

■<프라이드> 가 빚어낸 도조의 '영웅적' 모습은 최근 발견된 자필 메모와는 많이 다르다. 극형을 각오한 후의 유언이나 진술은 어차피 다듬어지게 마련이다. 반면 새로 발견된 그의 메모는 가공되기 전의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일본의 항복 직전인 1945년 8월 10~14일에 씌어진 메모에서 그는 포츠담선언 수락 결정을 '굴욕화평, 굴욕항복'으로 보고, '신폭탄과 소련의 참전에 겁을 먹은 결과'라고 비난하고 있다. 총리와 내무장관, 육군장관, 참모총장을 겸직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의 자기정당화 인식과 군인 티가 뚜렷하다.

■그러나 '적의 위협에 간단히 굴복할 만큼 국정지도자와 국민이 기백이 없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거나 '이들을 믿고 전쟁에 나선 것이 잘못'이라는 메모에서는 책임 회피 의식만 두드러진다. 권위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 성격으로 유명했고,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국민중심 의식을 빠뜨린 그가 권력의 꼭대기에 앉은 순간 일본의 비극은 준비됐던 셈이다. 내일은 광복절이자 정부수립기념일이지만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이다. 일본의 역사인식이 '패전'이 아니라 전쟁의 참화가 끝난 '종전'에 확고하게 머물 때 역사화해의 희망이 움틀 수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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