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선진화 방안이야 정부가 다 마련하고 발표해서 추진하면 그대로 가겠죠.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이튿날인 12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한 민간위원은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처지를 푸념했다. 이 민간위원에게 정부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산하 소위인 공기업선진화추진위원회 회의를 거쳤다지만, 아직 관련 자료 하나 받아보지 못했다”며 “정부 발표 내용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파악했다. 그 이상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날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아직 위원회에 보고는 안했어도, 내부적으로 위원들간에 교감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공공기관운영위는 공기업 임원 인사,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기능조정 등을 심의ㆍ의결하는 기구. 당연히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선진화방안도 공공기관운영위의 심의ㆍ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하지만 위원회 내부에서부터 ‘정부의 들러리 같다’는 불만이 새나오고 있다.
우선 인적 구성부터 현 정부의 거수기 노릇에 충실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정부위원이 절반을 차지하고 그나마 민간위원 9명 중 6명은 새 정부 들어 임명된 사람들로 구성돼있기 때문. 비판적 목소리를 낼만한 노무현 정부의 민간위원들은 공기업 개혁을 전담하는 소위인 공기업선진화추진위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왕따’까지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민간위원은 “지금과 같은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으로는 공기업 민영화와 같이 중대한 사안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정부를 견제하기 어렵다”며 “결국에는 반대 의견이 나온다고 해도 정부안 그대로 의결될 수밖에 없다”며 아예 체념 상태였다.
공기업 개혁의 첫 삽을 뜨기 무섭게 MB정부 특유의 일방통행식 밀어부치기라는 실책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어보이지는 않는다.
문향란 경제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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