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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20> 미국의 로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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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20> 미국의 로비스트

입력
2008.08.1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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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로비를 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유대인 나라인 이스라엘과 나라로 인정을 못 받는 대만을 들 수 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아마도 로비 활동을 가장 잘 못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로비 활동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데다, 로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또한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비에는 으레 돈이 따라다닌다. 액수도 대체로 엄청나다. 선거에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다. 돈을 쓰지 않는 로비는 있으나 마나다. 미국의 정치는 돈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정치보다는 그 정도가 훨씬 약하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데, 가령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자기 앞으로 들어온 정치자금으로 소속 당을 돕고, 또 어려운 후보들에게 얼마씩 지원하기 위해서도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게도 가장 어려웠던 일이 정치자금 모금이었다. 백인 지역구를 대표하는 동양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공화당 출신 후보들까지 나를 우습게 보니 선거 때마다 혹독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항상 돈이 부족해서 내 개인 재산을 청산해가면서까지 선거자금을 충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가정불화도 심해졌다. 이를 딱하게 여기고 공화당이 직접 내게 4만 달러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더욱이 처음 당선된 지 불과 6개월도 채 안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실린 내 기사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연방수사국 (FBI)의 선거자금 추적 조사가 시작되면서 모금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다행히 형사법에 저촉되는 모금은 없었지만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거의 매일 톱뉴스로 다루는 바람에 타격이 컸다.

내 선거운동원들은 한 목소리로 내가 유일한 동양계여서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그때 나를 목표로 죽이기를 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나는 그 당시 우리 교포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고 한국 정부의 로비 활동도 너무 취약해 의지할 곳도 없이 외로운 싸움을 펴나가야 했다. 너무 어려울 때는 내가 유대인이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 정치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돈도 엄청나게 쓴다. 미 국회의사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의 커다란 빌딩에 유대인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가 자리잡고 있다. PAC란 조직은 한 마디로 어떤 특정 후보를 도와주거나 낙선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PAC는 연방정부에 등록해야 하고, 한 사람이 PAC에 선거당 5,000 달러까지 기증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그 돈을 모아 누구에게 선거자금으로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무실이 바로 국회의사당 코앞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일리노이주 출신 동료의원이 내게 그 곳에 한 번 가서 재정적 도움을 청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단 그가 하는 말이, 그 사무실에 들어가면 현직 의원들의 사진이 전면에 걸려 있는데 “만일 당신이 `반 유대계’로 지목돼 그 사진에 포함돼 있거든 아예 말도 꺼내지 말고 그냥 나와야 한다”고 충고했다.

큰 마음을 먹고 자존심을 접어두고 그 곳에 찾아 갔다. 속으로 한국도 이런 데가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했다. 그 곳에 들어가자마자 현관에 붙어 있는 의원들의 사진을 부지런히 둘러봤다. 다행히도 내 사진은 걸려 있지 않았다. “아하 됐구나” 하는 반가움에 쭈뼛쭈뼛 하면서 책임자를 소개 받았다. 그 때만해도 유대인들은 거의 진보적인 민주당 편이었다. 공화당은 어쩐 일인지 인종주의 정당으로 낙인이 찍혀 왔다.

앞서 말했지만 흑인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대통령이 바로 공화당을 창당한 링컨 대통령이었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흑인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등지고 떠나 민주당에 가입했고 미국의 유대인들, 일본계들도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그러니 동양인에 공화당 의원인 내가 그 곳을 찾아간 것은 역시 어리석었다.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듣고 무거운 걸음으로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 한 군데 의지할 데가 없었다. 주로 가까운 지인들과 동창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포들의 도움은 한계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운영하던 토목설계 회사도 그냥 팔아 넘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겨 운영하다 보니 거의 들어먹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으로 초라한 내 모습에 “뭐 어떻게 되겠지”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천천히 걸어 국회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 당시 나는 주미 한국대사관의 입법관과 개인적으로 무척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그의 부탁을 많이 들어주었다. 미국의 의원들과 한국의 의원들을 합친 ‘한미의원협회’를 만들자는 그의 제안에 이를 성사시켰다. 미 의원 대표는 내가 했고 한국 의원 대표는 국회 부의장을 지냈던 오세응의원이 맡았다. 이들은 미국에 올 때면 항상 나를 찾았고 또 공항 도착 즉시 골프를 치기 위해 내 사무실에 여장을 풀기도 했다.

한번은 입법관이 나와 내 동료의원과 함께 점심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별안간 하루 전에 국정감사를 오는 일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공항에 마중 나가야한다면서 약속을 취소했다. 나는 무척 심기가 불편했다. 바쁜 와중에 어렵게 일정을 잡은 건데 자기네 국회의원을 마중 나가기 위해 이쪽 국회의원과의 약속을 취소하다니. 아니 딴 사람을 시키지 왜 본인이 꼭 나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공항까지 영접을 나가 호텔까지 모시고, 또 워싱턴 체제 중에 일체 스케줄을 만족스럽게 못하면 이들이 귀국한 후 소홀했던 대접에 불평을 늘어 놓을 것이니 결국 자기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사정 얘기를 했다. 이들은 특히 자기 부처 장관이 미국에 올 때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접을 위해 대사관이 발칵 뒤집힌다는 얘기다. 장관 정도면 대사 자신도 비행장에 마중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중 나온 미 대사를 향해 그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비행장에 마중을 나오게” 라고 질책했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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