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명령을 이행 중인 인물도, 추징금 미납자도, 보복 폭행 주도자도 모두 사면ㆍ복권됐다. 사면ㆍ복권 추진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시도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12일 발표된 광복절 특별사면ㆍ복권 대상자 명단에 사면ㆍ복권 대상으로 부적절한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비판이 일고 있다. 비판은 경제인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1,574억원의 추징금을 거의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사면을 받았다.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은 1995년과 97년 두 차례나 사면을 받고도 범죄를 저지르는 등 전혀 반성의 빛이 없는데도 또 다시 사면됐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은 40억원대의 국세 및 지방세를 체납했고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다.
장치혁 전 고합 회장과 김영진 전 진도 회장,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은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 사태를 야기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인물들이다. 이들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려운 처지들이어서 사면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3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이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면을 받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폭력사범인데도 경제인 명단에 포함돼 눈총을 받았다. 이들은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을 받았다'는 비판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짜고 치기' 의혹을 받고 있다. 손 전 회장은 지난 4월말 돌연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고, 최 회장도 이 경우 같은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는 대법원 관행에 따라 5월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미리 언질을 받고 사면 요건을 갖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인들은 대부분 특별복권까지 이뤄져 당장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있게 돼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의 측근인 홍기훈 한국넬슨제약 회장의 사면도 '측근 봐주기' 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홍 회장은 지난 3월 서 대표에게 추징금 8,000만원을 빌려줬던 인물로, 당시 자금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은 '특혜 종합판'이다. 그는 당뇨합병증 등을 이유로 5년 이상 형집행정지 혜택을 받았고, 지난해 2월에는 특별감형으로 형량이 줄어든데 이어 이번에는 아예 남은 형의 집행을 면제받았다. 언론사주 등 언론인 5명도 슬그머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02명의 선거사범 사면은 이명박 정부의 선거사범 엄단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 공무원 32만여명의 징계 내역을 일괄 삭제한 것은 '공무원 내편 만들기' 목적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면ㆍ복권 대상 후보들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사실상 첫 시험대에서 '존재이유'를 전혀 증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사면이 타당해 보이는 사면 대상자들이 한 명도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면 자체의 남발"이라며 "일정 형량을 채워야 사면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부정부패사범 또는 반인륜사범에 대한 사면은 불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견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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