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호주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 그 곳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선수는 한국의 열 여덟살 소년 박태환이었다.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트 해켓은 물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서양 선수들을 모두 물리친 동양 소년에게 쏠린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박태환은 당시 자유형 200m에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맞닥뜨렸다. 모두가 펠프스의 적수는 없다고 예상했다. 출전하는 종목마다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수영 역사를 다시 써나가고 있는 펠프스는 '수영의 신' 그 자체였다.
박태환은 선전했다. 즐비한 강호들을 물리치고 3위로 골인했다. 그러나 펠프스는 박태환보다 3초 가까이 먼저 유유히 터치패드를 찍은 상태였다. 1분43초86의 세계신기록. 이언 소프(호주)의 세계기록을 경신한 것은 무려 7년 만이었다.
그리고 1년 5개월 후, 박태환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베이징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그런 박태환에게도 아직 펠프스의 벽은 높아만 보인다.
12일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펠프스와 맞대결을 펼치는 박태환은 11일 준결선을 마친 후 "펠프스에 비하면 저는 아직 갓난아이일 뿐"이라며 애교어린 엄살을 부렸다. 박태환은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기 때문에 또 금메달을 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차가 많이 나고 기술면에서도 많이 부족하다"며 자신을 낮췄다. 또 "펠프스의 8관왕을 저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펠프스에 비하면 나는 갓난아이나 다름 없다"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날 펠프스는 박태환과 함께 준결선을 치른 지 불과 한 시간 후 계영 400m 결선에서 베이징올림픽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번 대회 첫 2관왕에 올랐다. 그의 8관왕 목표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종목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펠프스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최고조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박태환이 펠프스를 상대로 의외의 선전을 펼쳐 그의 8관왕을 저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10일 예선(1분46초73)과 11일 준결선(1분45초99)에서 연달아 자신의 아시아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박태환의 기록 추이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이미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대업을 이뤄내며 부담을 덜어낸 박태환으로서는 홀가분한 상태로 경기에 나설 수 있어 최선의 경기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5번 레인의 박태환과 6번 레인의 펠프스. 그 세기의 대결은 12일 오전 11시13분 내셔널아쿠아틱센터에서 벌어진다. 한국 수영 사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의 대업을 이뤄낸 박태환이 펠프스라는 벽을 넘어 올림픽 2관왕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을지, 박태환의 당찬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 英수영 코치 "막판 스퍼트 세계 최고"
"박태환의 미래는 무궁무진합니다."
19세 나이로 올림픽을 제패한 한국의 박태환. 그에 대한 세계 수영계의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12일 내셔널아쿠아틱센터에서 만난 영국 수영대표팀의 벤 티틀리 코치는 "박태환의 나이가 아직 19세에 불과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벌써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이뤄냈지만 아직도 그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티틀리 코치는 "박태환의 성장세가 놀라울 정도다. 몇 년 전부터 그를 눈여겨봤는데, 나날이 기량이 놀랍게 향상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티틀리 코치가 지적한 박태환의 가장 큰 장점은 스타트와 막판 스퍼트.
티틀리 코치는 "지난해와 비교해봐도 스타트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박태환의 최대 강점인 막판 스퍼트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 개막 이후 경기를 치를 때마다 0.6초 안팎의 매우 빠른 스타트 반응 속도를 보이고 있다. 가공할 만한 막판 스퍼트는 박태환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끈 가장 큰 힘.
티틀리 코치는 "아직 19세에 불과한 박태환에게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등 메이저 대회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박태환은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선수"라고 말했다.
티틀리 코치는 12일 열리는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3)와 박태환의 자유형 200m 맞대결에 대해서는 펠프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펠프스는 매우 파워풀하고 놀라운 선수"라며 "아직 자유형 단거리에서 펠프스를 이길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티틀리 코치는 이어 "4년 후 나의 고향에서 열리는 런던올림픽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모른다"며 "박태환이 런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쥘 것"이라고 예상했다.
■ 세계의 눈, 아시아 수영에 '휘둥그레'
박태환(19ㆍ단국대)이 남자 자유형 400m를 제패하며 세계 수영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10일. 경기가 열린 내셔널아쿠아틱센터 공식 기자회견장에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들은 온통 경쟁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한국의 열아홉살 소년의 정체를 알아내느라 분주한 모습.
뉴욕 타임즈의 크리스토퍼 클래리 기자는 "박태환이 정말 한국 수영의 첫번째 올림픽 금메달인가"라며 한국 취재진을 상대로 거듭 확인을 했다. 그는 "어떻게 올림픽에서 한 번도 메달을 못 땄던 나라에서 저렇게 완벽한 선수가 나올 수 있는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는 금ㆍ은메달을 나란히 따낸 박태환과 장린(중국)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시아 수영의 성장세가 무섭다"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거센 파도를 넘어선 '아시아발 태풍'이 올림픽 수영에 휘몰아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흥행 카드로 꼽히는 수영 경영 종목 결선이 시작된 10일부터 베이징 내셔널아쿠아틱센터는 한중일 3국 국가가 쉴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10일 박태환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데 이어 반대편 다이빙장에서는 중국의 '미녀 듀오' 궈징징과 우민샤가 싱크로나이즈드 3m 스프링보드 우승을 차지했다.
11일에는 일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일본 수영의 영웅 기타지마 고스케(26)가 남자 평영 1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것. 기타지마는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남자 평영 100m와 200m를 휩쓸었던 세계 수영계의 간판 스타다.
기타지마의 이날 기록은 58초91. 강력한 라이벌인 브랜든 핸슨(미국)이 지난 2006년 작성한 59초13의 종전 세계기록을 2년 만에 0.22초 단축한 것이다.
기타지마가 평영 100m 사상 처음으로 59초 벽을 깨며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자 일본 언론들은 앞 다퉈 이 소식을 대서특필하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타지마는 이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어제 박태환의 경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원래 막강한 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제 대단한 선수임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박태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타지마는 이어 "아시아 수영은 아직 세계 수준에는 모자란 면이 있다. 그러나 박태환처럼 좋은 선수들이 나오고 있어 격차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과 기타지마는 각각 자유형 200m와 1,500m, 평영 200m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한다. 거세게 불고 있는 '아시아발 태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세계 수영계가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허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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