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1
부엌 지붕 새로 스며든 빗물이 판자를 휘어놓았다 식기들이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침 햇살에 이빠진 웃음을 웃는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食口를 계산하는 그릇들도 이 집 식솔들이다
4
산 아래는 지금 영구 임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포크레인은 술취한 애비를 닮았다 마구 家産을 부수어 놓는다 레미콘이 임신한 여인네처럼 뒤뚱거리며 뒤를 따라온다 흙발로 여기저기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트럭들… 시끄러운 이웃이다
5
바람만바람만 따라오던 가등의 행렬, 어깨 으쓱이며 돌아가고 건너편 산등성이 불빛들도 까무룩 조는 초여름 저녁, 김복례 할머니 형광등 값을 아끼려 일찍 자리에 든다 벌써 눕느냐고 칭얼대며 은초롱꽃들이 등을 켜들고 슬레이트 처마 아래를 들여다본다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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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김복례 할머니는 이름 때문에 더 슬퍼보인다. 할머니의 기구한 생이 ‘복’과는 전혀 무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북했으면 포크레인을 두고 가산을 함부로 부수는 술주정뱅이 ‘애비’와 같다고 했을까.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불우를 원망하는 대신 가만히 끌어안는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며 식기를 닦고, 처소를 위협하는 공사장 트럭들마저 성가시긴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이만하면 성자가 따로 없다.
‘인간극장’ 카메라 맨이라도 된 듯 할머니의 자잘한 일상을 눈에 담던 시인은 전기값 근심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할머니를 위해 은초롱꽃등을 켜 놓았다. 몇 촉 되지도 않을 꽃등이지만 손주 하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대신 칭얼댈 줄 아는 꽃등의 속 깊은 빛이 유난히 환하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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