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의 물량과 놀라운 상상력을 동원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세계인들은 환호와 찬사 이상으로 두려움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세계의 공장 ''자원의 블랙홀' 등의 상투적 수사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국의 잠재력이 잘 드러난 까닭이다. 문득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한 선배가 3년여 전 쓴 칼럼이 생각나 찾아 보았다.
한중 발마사지 처지 역전 경고
"2개월에 한번 꼴로 중국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하는 분을 최근 만났는데 그는 돌아올 때마다 가슴이 쿵 뛴다고 했다…중국이 금방 한국을 따라잡고 저만치 앞서 내달리는 미래가 너무도 빤히 보이기 때문이란다…중국역사를 전공하는 한 교수는 '이렇게 가다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사람들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털어놨다"(방민준 '중국을 다시보자' 2005. 3.3) 한국인들의 중국여행 붐이 일던 당시에도 1만원 안팎의 돈으로 발 마사지를 즐기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해 주는 처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에 가슴이 서늘했는데 이번 개막식은 그런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선배가 2006년에 쓴 칼럼은 이번 개막식의 컨셉을 '강한성당(强漢盛唐)'으로 잡은 중국인들의 야심을 엿보게 한다. 그해 초 영국 세필드 대학의 한 연구그룹은 '세계 경제력 지도'라는 이색 자료를 내놨다. 이는 세계은행 미 중앙정보국(CIA) 등 9개 기관의 자료를 토대롤 1975년에서 2002년까지 27년간 각국이 거둔 경제성장률을 기준으로 삼아 2015년의 각국 국내총생산(GDP)을 달러베이스로 산정한 뒤 이에 따라 영토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 결과에 따르면 1960년 전세계 부의 5%를 점했던 중국이 2015년엔 27%를 차지해, 중국이 전세계 부의 26%를 차지했던 서기 1년, 즉 한(漢) 나라 때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에 맞춰 그린 2015년 세계지도엔 한국의 몸집도 제법 크게 나오지만 거대한 중국과 거의 호주대륙 수준의 일본 사이에 낀 모습은 영락없이 넛 크래커에 끼여 곧 깨질 호두를 연상케 한다. 샌드위치론도 여기서 힌트를 얻었던 듯 싶다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세계에 과시한 위용을 직접 관람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권 쪽에서 7월말부터 이 대통령이 8ㆍ15를 기해 'MB드라마의 제2막'을 열겠다는 각오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으니 일단은 중국지도부와 같은 강한 리더십을 복원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을 법 하다. 한편으로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부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수영과 유도, 양궁 등에서 잇달아 터지는 한국선수들의 금메달 낭보가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올림픽 정국은 하한 정국과 맞물려 이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고 있다. 이해집단의 저항을 낳을 수 있는 공기업 선진화 등 각종 개혁조치나 국민 법감정과 어긋나는 사면조치, 집권세력 강화를 위한 낙하산 인사 등 공학 정치의 유혹이 강해지는 시기라는 얘기다.
어제 정부가 주공ㆍ토공 통합등 1단계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고 이 대통령이 정연주 KBS사장 해임 제청안에 서명한 것이나 최근 여권 출신 정치인들을 대거 공기업사장에 기용한 것은 이후 MB정치의 기본 리더십 코드가 강성으로 치달을 것을 예고한다. 집권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제시한 발전(창조적 실용주의)과 통합(화합적 자유주의)의 두 날개 중 후자를 접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 쪽 날개로 나는 비행은 필연적으로 중심을 잃고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국주도권 회복이라는 것도 결국 일방주의에 다름 아니다.
집권2막 일방주의 유혹 털어야
베이징 올림픽으로 표출된 중국의 힘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막연하게 가져왔던 경각심의 실체를 깨닫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정부 역시 이런 국면을 잘 활용해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우리 경제를 끌어올리는 의식과 제도 측면의 동력을 확보하는 프로그램을 짤 때다. 이 대통령의 집권 2막 국정철학과 비전을 담을 '8ㆍ15메시지'의 감동이 기대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행여라도 그것이 법과 질서만 앞세우는 일방주의로 흐른다면 2막의 흥행도 처음부터 실패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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