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19ㆍ단국대)이 한국체육사를 새로 썼다.
박태환은 10일 오전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결선에서 3분41분86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사상 첫번째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 수영이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첫 출전한 지 44년 만의 경사다.
한국 체육사의 일대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쾌거다. '기초 종목의 불모지'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는 점에서 박태환의 금메달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한국은 '체육 강국'을 지향해 왔지만 일부 '효자 종목'을 제외하고는 세계 무대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육상, 수영 등 이른바 '기초 종목'은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세계 4위까지 올랐고 대회마다 '톱 10'을 목표로 하는 한국이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할 수 없었던 이유다.
특히 수영은 세계 무대 도전 자체가 무모한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메달 다툼은 고사하고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지 못했다. 한국 수영의 대명사격인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1972년 뮌헨 대회에서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도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예선 탈락에 그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한국 수영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 혼영 400m에서 남유선이 7위를 차지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올림픽 결선에 서보지 못할 정도로 '세계 수준'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아테네 올림픽 남자 평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기타지마 고스케(일본)의 포효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수영 신동' 박태환의 등장으로 한국 수영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며 중국과 일본이 양분하던 아시아 수영 판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중국 언론은 '향후 아시아 수영 판도가 한국, 중국, 일본의 삼파전 양상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신체적인 한계 탓에 아시아인은 자유형에서 통할 수 없다'는 통념을 부숴버렸다.
박태환은 2007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베이징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수영 자유형의 아시아인 금메달리스트는 1936년 베를린 대회 남자 자유형 1,500m의 데라다 노보루(일본) 이후 72년 만이다. 박태환은 "미국과 유럽, 호주가 주도하던 종목에서 편견을 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 한국 선수들도 해낼 수 있다는 다짐을 했으면 좋겠다"며 '세계의 장벽'을 뛰어 넘은 소감을 밝혔다.
첫 레이스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부담을 던 박태환은 자유형 200m와 1,500m에서 또 다른 '새 역사 창조'에 도전한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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