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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빗나가는 기상예보·흥행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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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빗나가는 기상예보·흥행예보

입력
2008.08.1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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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 라는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를 '혼자' 본 적이 있다. 극장 안에 손님이 단 한 명이었다는 얘기다. <매트릭스> 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의 야심작이고, 무려 2억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기에 기대치는 더할 나위 없이 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개봉 2주차에 벌써 극장이 텅텅 빌 정도였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세계적으로 완벽한 흥행 참패였다. 그 정도로 외면 받거나 욕먹을 영화는 절대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 편의 영화엔 만든 사람들의 뜻과 의도가 들어 있고, 관객들은 그에 반응한다. 영화흥행이란 그 반응의 정도이기에, 그것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점치기 위해 과거 흥행자료를 뒤지고,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본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영화는 저러저러한 관객 성향과 잘 맞기에 성공확률이 높다'는 흥행 예측치를 내놓는다. 이를 근거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영화가 만들어져 극장에서 공개된다.

문제는 늘 정확할 순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점점 정확도가 떨어져 종잡을 수 없다. 요즘의 기상예보처럼. 왜 기상예보가 잘 맞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환경 변화이다. 예보란 쌓여진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과거의 데이터가 만들어진 기상환경과 지금 환경이 다르니 상당부분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슈퍼컴퓨터를 도입해도 예측은 점점 힘들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의 삶의 환경과 사회구조가 바뀌었다면 과거 흥행 데이터에 의한 예측은 맞지 않게 된다. <스피드 레이서> 는 완성도는 높지만 미국 관객들이, 나아가 세계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어떤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최악의 불경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사회에서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과 가상공간의 시각적 쾌감이 공염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에 대한 역설적 증거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아이언 맨> 의 놀라운 흥행이다. 비슷한 SF 장르이고 똑같이 유명배우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인간은 매우 불완전하다. 그런 주인공이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 발전하여 마침내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상당히 현실감 있게 보여진다.

한국영화 <추격자> 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이 영화가 잘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엔 생생한 한국사회가 담겨 있다. 사회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개인의 안전을 지키고 범인을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추격자, 그는 오늘날 한국인의 자기 반영적 모습이다. IMF 이후 최대의 불경기를 맞은 채, 초등학생 아이들이 유괴살인 당하는 걸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죄책감,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뽑은 정권이 강부자 정권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는 배신감이 영화의 무의식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과거의 흥행 영화들 속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영화의 흥행예측도 과거의 데이터만 믿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지구환경 변화에 따라 일기예보 모델을 바꿔야 하듯, 영화 또한 관객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정치ㆍ사회적 변화에 주목하며 새로운 틀을 짜야만 한다. 지구 온난화가 일기예보의 새로운 변수라면 한국사회를 접수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영화흥행 예측의 또 다른 거시적 분석요소가 되어 버렸다. 세계화 흐름에 한국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고,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관측'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의 흥행 예측은 늘 난데없는 열대성 폭우에 두들겨 맞으며 관객들의 실망만 자아낼 것이다.

정윤철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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