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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제니퍼 바틀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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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제니퍼 바틀렛

입력
2008.08.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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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왜 주로 캔버스나 종이에 그릴까? 보다 나은 그림의 지지대는 불가능한 것일까? 화가들이 마주하게 되는 근원적 질문 가운데 하나다. 역사를 보면 이러 저리 수를 쓴 작가들이 없지 않다.

유리판, 금속판, 수지판 등 여러 재질이 등장했지만, 혁신적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은 작가가 몇몇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제니퍼 바틀렛(Jennifer Bartlettㆍ67)이다.

바틀렛은 1968년 말, 가로와 세로가 모두 12인치(30.479㎝)인 정방형의 금속 화판을 특수 제작, 새로운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금속으로 제작된 안내 표지판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자신의 눈엔 금속판이 마치 판지(板紙)처럼 보였다나.

공업재료상점에 금속판을 주문한 작가는, 판재를 다시 인근 공장에 맡겨 에나멜 도색 처리를 했다. 색상은 백색.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백색 에나멜 도장 위에 실크 스크린으로 회색의 격자무늬를 박았다. 선들의 간격은 4분의 1인치(0.635㎝). 작가만의 튼튼한 모눈종이-언제든 원하면 그림을 싹 지우고 다시 작업할 수 있는-가 완성된 셈이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테스터스사(Testors)의 에나멜 물감을 사용했다. 이는 모델 제작 동호인들이 모형 비행기나 자동차를 제작할 때 즐겨 사용하는 제품으로, 별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당시 25가지 색상이 시판됐지만, 작가는 보통 기본적인 6가지 색상-흰색, 노랑, 빨강, 파랑, 녹색, 검정-만을 사용했다.

1960년대 후반 바틀렛은, 당시 많은 청년 화가들이 그랬듯,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에게 영향을 받았다. 1967년 르윗의 글 "개념미술에 관한 단평"을 읽고 감명을 받은 그는, 수학적 법칙을 그리기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천재적 영감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은 혁신적인 동시에 매력적이었다.

1971년작 '이진법의 조합(Binary Combinations)'을 보면, 작가가 특수 제작한 화판에 6가지 색상의 에나멜 물감으로 동그란 점을 찍어 체계적으로 색상을 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두 번째 화판을 보면, 눈금에 맞춰 한 칸 걸러 하나씩 노란 점을 찍고, 다시 빈칸에 동일한 분량의 빨간 점을 찍었다. 이를 멀리서 보면 주황색으로 뵌다.

그러나 바틀렛은 이러한 수리적 적확성을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1975년에 시작해 1976년에 완성한 대작 '랩소디(Rhapsody)'는 987점의 화판으로 구성된 서사시적 작품인데, 테스터스사의 에나멜 물감 25색이 총동원된 화면은 추상과 반추상, 구상과 추상적 구상으로 제각각이다. 평자들은 이를 일종의 그림에 대한 그림, 즉 컨템퍼러리 회화의 흐름에 대한 회화적 논평으로 이해했다.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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